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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 1

중간고사  성적이 나왔다. 사실 시험범위를 채 끝까지 보지도 못했고(뒤 1/3 을 통째로 던져버림), 그나마 읽은 부분들도 60%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한 찜찜한 기분으로 시험장에 들어갔다. 이렇게까지 준비되지 않은 채로 시험을 친 건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근데 이상하게 문제가 너무 쉽기도 했지만(...) 분명 빈칸으로 제출한 답도 있었고 몇몇 문제는 헛소릴 써놓았던 것 같은데 90점이 나왔다.;;

어떻게 채점을 한건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좋아졌다! 미국에서도 벼락치기가 먹히는구나! 

첫 시험에 너무 지레 겁을 먹고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기도 하다. 결과가 좋으니 또 다 미화되는구나.

 

UP 2

연구실에서 캐나다로 학회를 보내주어 다녀왔다. 난 아직 논문도 없고.. 그냥 구경하러 가는 수준이었지만, 인터넷에서만 익히 듣던 이름들이 눈앞에 걸어다닌 다는게 참 신기했다. 유학준비를 하면서 왠만한 대학의 시스템 교수님들은 다 스토킹(?)을 했는데, 그러다 보니 밥먹다가, 커피마시다가, 화장실에서, 복도를 지나가다가, 자꾸 엌?! 하고 익숙한 얼굴이 지나가는게 신기했다ㅋㅋㅋ 정작 그 교수님들은 나를 모를테지만.. 특히, 그렇게 메일을 보내고 2주를 끙끙 애태워가며 기다려도 답장 한 줄 안주시던 교수님들이 걸어다니는 걸 보는 건 참 기분이 묘했다. 답장 없는 펜레터 or 혹은 기도를 여러번 보내다가 끝내 답을 받지 못했는데 그 당사자가 걸어다니는 걸 보는 기분이란.... [각주:1] 뭐 어쨌든 지금은 제일 좋은 랩에 들어와있으니까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신기한 정도긴 했다.

 

Down 1

주어진 시간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양을 난 스스로 잘 아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쉬엄쉬엄 했을 때 일주일에 얼만큼의 일을 할 수 있고, 정말 빡세게 하루에 3시간씩 자면서 불태우면 일주일에 얼만큼의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안다. 그런데 너무 아무렇지 않게, 내가 해낼 수 있는 정도보다 더 큰 일이 턱 주어져버리니 오히려 의욕이 바닥을 찍어버린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하루에 세시간 정도는 자야, 적어도 일주일 정도는 그 패턴을 유지할 수 있고, 더 이상 잠을 줄일 수는 없다는 걸 아는데. 결국 하늘이 두쪽나도 내가 이 일을 끝내지 못할 거란 걸 스스로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오히려 불태울 의지가 사라져 버리는 것 같다. 어차피 못할건데... 하는 마음이 자꾸 몸을 무겁게 만들고 정신을 산만하게 만들고 집중을 방해한다. 그래, 이제 문제는 파악했는데,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다.

 

Down 2

난 언제 어디서든 머리만 대면 깊게 잘 자는 스타일이었다. 넌 도대체 언제 자? 그렇게 자고 어떻게 버텨? 하는 말들을 정말 자주 들었는데, 내가 생각했을 때.. 체력이 좋다기 보단 고속충전이 되는 스타일이라 가능한 게 아니었나 싶다. 눕자마자 바로 잠들고, 한번도 깨지 않고 엄청 깊게 자고, 잠이 모자라면 점심/저녁 시간에 10분만에 대충 밥을 먹고 30-40분정도 다시 딥슬립을 하고 나면 금새 체력이 충전되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생각이 많아서인지 도무지 잠을 깊게 못자는 것 같다. 누워서도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자려고 누웠다가 해야 할 일이나 확인해보고 싶은 게 아, 하고 생각나서 두세번씩 침대에서 일어나서 다시 불을 다 켜고 컴퓨터를 잡는 일이 생긴다. 자다가도 화들짝 놀라서 깨서 시계를 보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평소보다 자꾸 늦잠을 자게 돼서 또 너무 많이 잤다는 생각에 하루종일 마음이 불편하다. 새로 생긴 갤럭시 워치로 심박수 수면 트래킹을 해 보니 얕은 수면만 하고 있고, 깊은 수면으로는 넘어가지 못해서 수면효율이 평균에 비해 훨씬 낮게 잡혔다. 6시간을 자도 3시간밖에 못 잔 게 되어버리니 하루종일 피곤한 게 당연하다. 이런다고 더 나아질 게 없는데 난 왜 이렇게 불안해하는걸까

 

UP 3

친한 언니의 도움으로 꽤 떨어져 있는 한인 마트를 다녀왔다. 우버를 타고 가면 왕복 50불은 나오는 거리라, 미국에 혼자 정착한 뒤로는 처음 다녀온 거였다. 그냥 한국의 마트를 보는 것처럼, 왠만한 모든 것 들이 다 있었다. 심지어 다 양념해놓은 불고기나 각종 밑반찬들까지 팔고있었다. 자꾸 한국 가고싶다고 노래만 부를게 아니라, 그냥 한인마트를 좀 더 자주 다니면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을까 싶다. 50불.. 비싸긴 하지만 어차피 차를 산다고 해도 한달에 보험료가 그거보다 더 나올거니까. 한달에 한번정도는 우버를 타고 한인타운에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빔밥이 해먹고싶어서 콩나물이랑 숙주나물, 시금치, 느타리버섯을 사왔다. 나물을 잔뜩 무쳐놓으면 다음주는 내내 요리할 걱정 없이 초스피드로 비빔밥을 만들어먹을 수 있다. 

 

Down 3

이리저리 생각해봐도 연구하기에 최적의 환경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익히 듣던 각종 연구실의 부조리나 불합리함들도 없고, 주위 사람들도 다 너무 잘하고, 하다못해 건물 시설들이나 장비들도 최고다. 나만 잘하면 되는데, 그게 참 어렵다. 한국에서 연구를 할 땐 이것저것 아쉬운 것들이 많아서였는지, 이런 환경을 정말이지 너무도 애타게 바랐는데 왜 이 안에서는 죽쑤고 있는건지 모르겠다. 김연아의 금메달 출전 영상을 보여주고는 자 두달뒤에 이렇게 똑같이 공연하는거야! 하는 기분이라고 하면 비유가 적당할까. 난 아직 유튜브에 '스케이트 신는 법' 이런 거나 찾아보고 있는데.. 아니 이게 말이 돼? 하면서 주변 친구들이랑 다같이 끙끙대고 고통받으면 또 모르겠는데, 주변에서는 트리플 악셀을 폴짝폴짝 뛰고 있으니 더 문제다. 주변과 비교하지 말고 내 길을 가라고 하지만... 쉽지 않다. 그게 언제쯤 가능해질지. 

  1. 그래서 내 메일은 왜 씹으셨냐구요!!!!!! ㅠㅠㅠ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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