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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이의 비애

미국에 처음 온 게 2019년인데, 2023년이 다 되도록 여태 차 없이 뚜벅이로 살았다.

 

미국에서는 차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고 할 정도로 차가 정말 생활에 필수적인데, 그럼에도 차 구매를 망설였던 이유가 몇가지 있다.

  • 19년에 오자마자 전동킥보드를 샀는데, 대략 편도 2-3km 정도까지는 충분히 커버가 된다. 주차문제도 딱히 없고, 도로규정이나 법규를 잘 지키면서 타다보니 딱히 불안할 것도 없었다.
  • 캠퍼스 근처에 살아서  통학은 도보/킥보드로 가능
  • 워낙 성향이 집순이라 일주일에 한 번 나가고, 한번 나갈 때 모든 일을 한번에 해결
  • 차량 구매비를 제외하고서라도 유지비 (보험료, 기름, 정비 등)가 정말 미니멈 월 $300 는 나가는데, 아무리 우버를 흥청망청 타고 다녀도 나는 월 $300까지 못 쓴다.
  • 미국에서 운전을 안해봐서 영 자신도 없다. 사고나면 괜히 복잡할것같아서 무섭다.
  • 주변 친구들이 다 차가 있어서, 한인마트 다니거나 놀러다닐때 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메타에서 비지팅리서처를 하러 캘리에 갔을 때, 메타 복지의 일환으로 사내에 enterprise 라는 공유자동차[각주:1]  가 있었는데, 직원들은 무료로 빌릴수가 있었다. 캘리에서 지내는 동안, 택배반품을 한다던지, 장을 본다던지, 백신맞으러 cvs 에 간다던지, 자잘하게 차가 필요한 일이 생길때마다 평일에 회사 차를 빌려서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미국에서 운전하는게 점점 자신도 생기고.. 평소 나에겐 골칫거리였던 잡일들이 차가 있으면 당연하게 금방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체감했다. 

 

캘리에서 아틀란타로 돌아온 후에는, 일단 zipcar [각주:2] 를 빌려서 한동안 타고 다녔다. 집에서 도보 10분정도 거리에 가서, zipcar 를 빌리고, 한인마트에서 장을 본 다음, 집에 와서 냉장/냉동 식품들을 빠르게 정리하고, 다시 zipcar 를 반납장소로 타고 가서 반납한다음, 집까지 10분 다시 걸어오는 식이었다. 이렇게 한달에 딱 두번정도만 빌려면, 대략 한번 빌릴때마다 $30 근처라, 한달에 $60으로 차 없는 불편함을 해결 가능했다.

그런데... 이렇게 몇번 운전을 하고 다니니, 아예 모르던 때보다, 오히려 차가 더 가지고싶어졌다. 마트에서 시간 체크해가며 매번 서두르면서 장보는 것도 싫고, 돌아가는 길에 밀크티 한잔 사먹고 싶어도 반납시간이 촉박해 그럴 수 없는 게 아쉬웠다. 그렇다고 한시간을 연장하자니 고작 밀크티 하나 먹자고 $15를 더 써야한다는 것도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느낌이었고 말이다. 집에 도착해서 짐을 다 정리하고 이제 쇼파에 가 눕고 싶은데, 숨돌릴 틈도 없이 얼른 다시 주차장에 내려가 차를 반납하러 출발해야하는게 너무 번거로웠다.

 

이때부터는 '차가 필요하다' 의 개념보다는 정말 그냥 '차가 가지고 싶다' 는 마음이 강해졌던 것 같다.

 


차량 구매 알아보기

마침 삼성과 메타에서 돈도 좀 벌었겠다, 차를 사고싶단 마음이 슬슬 들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졸업까지 최소 2년, 졸업 후에도 바로 한국을 돌아갈 것 같지는 않으니 대략 적어도 3-5년정도는 타지 않을까 싶은데, 감가상각 그래프를 찾아보니 대략 2-3년된 중고차를 사서 타다가 다시 중고로 파는게 가장 경제적인 선택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미국 중고차 시장이 아직도 미쳐서 돌아오지 않고 있단 거다. 내가 사려는 혼다 시빅을 기준으로, carmax 나 carvana 를 찾아봤을 때 2년 정도된 중고차 가격이 신차 MSRP 보다 높았다. 신차는 재고가 많이 없어서 자기가 원하는 트림/색상을 사려면 몇달씩 기다려야 한다던데, 그래서 상대적으로 원하는 차를 곧바로 받을 수 있는 중고차의 가격이 더 높게 책정된 것 같았다.

 

내가 사려는 2023 Honda Civic Hatchback Sport 트림, Sonic Gray Pearl 색상의 MSRP 는 $27,400. Tax, Title, Tag 미포함 가격.

 

Honda Civic Hatchback Sport 트림의 Carvana 중고차 가격. 내가 원하는 색은 매물도 잘 없는 데다가, tax, title, registration 에 더해 shipping 까지 추가로 붙는다.

 

이렇게 된 이상, 어차피 나는 급한것도 아니니 신차를 구매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대략 30곳정도 quote 를 넣어본 결과, 같은 옵션/색상의 2년된 중고차 보다 OTD [각주:3] 를 더 저렴하게 받았다.

12월에 메일로 견적을 받은 다음, 구매 의사를 밝혔더니 그럼 자기가 보내준 견적서 밑에 사인해서 답장해주면 된다고 하길래 폰으로 그 자리에서 사인해서 메일답장을 보내버렸다.

 

그런데 그쪽이 아는 내 정보는 겨우 메일주소가 전부고, 실제로 만나본적도, 신분증을 보여준적도, 심지어 전화번호도 모르는데, 계약금도 없이 이렇게 정말 메일 답장 한통으로 차량 구매 예약이 되는게 맞나 너무 의아했다. 대충 차가 딜러샵으로 배송오기까지 두달정도 걸릴거라는데, 두달동안 열심히 여기저기 가격문의를 해봐도 여기만큼 낮게 주는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나중엔 점점 "얘들이 정말 이 가격에 나한테 차를 팔아줄까? 나중에 가서 딴소리하면서 가격 올리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커졌다.

 

그러던 1월 말, 갑자기 "너 차 도착함! 오늘 방문 가능?" 하는 메일이 왔고, 메일을 보자마자 그날 바로 딜러샵으로 달려갔다. 혹시라도 늦게 갔다가는 정말 다른사람한테 팔아버릴까봐... 정말 메일을 받자마자 일어나서 나갈준비를 했다.

 

그리고... 

 

정말로 가자마자 그 날 바로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심지어 아직 번호판도 없음.

 

요즘 할부 이율도 높다 그러고, 어차피 대학원생 월급에서 할부금 내면 월세 낼 돈도 안남기때문에 깔끔하게 그 자리에서 전액 다 결제해버렸다. 그 중에 $10,000 달러는 신용카드로 내도 된다고 하길래, 만불은 카드로 내고 나머지는 수표로 전액 현금결제!

 

신용카드로 긁으면 카드마다 몇 퍼센트 마일리지나 캐시백을 받을 수 있어서, 난 Capital One 카드로 결제하고 바로 2만 마일리지를 받았다. 보통 그래서 딜러들이 할부를 제일 좋아하고 (제휴된 곳이 있어서 리베이트를 받을수있다고 함), 신용카드로는 잘 안해준다고 그랬는데, 이 딜러샵은 가격도 제일 낮게 불렀으면서 카드로 만불이나 긁어줬다. 최고야..!!

 

 

아, 차를 받아서 바로 끌고 나오려면 차 보험이 있어야 한다. 난 프로그레시브랑 몇군데를 더 보다가, 같은 보장 기준으로 제일 싼 GEICO 에서 6개월을 일시불로 긁었다. 이것도 6개월치 한번에 내면 더 할인해준다. 

딜러가 내 차를 세차해주고 있는 동안, 폰으로 슉슉 가입하면 금방이다. 

 


어화둥둥 내 첫차

 

차가 생기고 나니... 볼때마다 너무 예쁘다. 앞에서 봐도 예쁘고 뒤에서 봐도 예쁘고 옆에서 봐도 예쁘고, 안에서 봐도 예쁘다. 

실내도 요즘 새로 나온 차 답게 깔끔하게 허니콤 패턴이 일자로 쭉 조수석까지 연결되어있는 형태다. 벤트 클립 거치형 악세서리들을 강제로 금지당한다는 단점(?) 이 있긴 하지만, 오히려 덕분에 차에 주렁주렁 뭐 안달고 깔끔해서 좋은 것 같다.

 

 

드디어 나도 차가 생겼다! 인생 첫 차! 심지어 새차!

차가 생기고 나니 바로 차량용품에 관심이 아주 많아졌다ㅋㅋㅋㅋ

 

일단 사자마자 세팅한 것들을 소개해본다. 

 

 

 

제일 먼저, 대시캠. 미국에서는 안다는 사람이 더 많다고는 하지만.. 나는 한국인이니까 불안해서 결국 달기로 결정했다. 다만, 설치 서비스까지 받기에는 너무 비싸서 그냥 아마존에서 적당한 거 사다가 셀프로 시공해 버렸다. 앞/뒤 4k+2k 화질 투 채널에, 나이트 비전이나 주차 모니터링까지 되는, 나름 될거 다 되는 아이인데 혼자 설치하니 대략 100달러 내외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심지어 조금 이른 생일선물로 친구들이 사줌!

 

설치는.. 유튜브 두세개 찾아 보고, 따라했는데, 선 정리를 깔끔하게 문짝 고무패킹이랑 필러들 사이로 집어넣는 게 핵심이다. 걱정은 많았지만 막상 하니까 5분도 안걸리고 엄청 금방 뚝딱 깔끔하게 잘 시공되었는데, 문제는 뒤쪽이었다. 

 

세단은 뒷유리에 붙이고 선 정리만 안보이게 해주면 끝인데, 내 차는 해치백이라.. 뒷유리에 카메라를 붙이면 트렁크를 열 때 카메라가 같이 딸려 올라간다. 선이 대롱대롱 공중을 가로질러서 매달리게 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이리 저리 끙끙대다가 결국 꽤 빡센 시공이 필요했다. 생각보다는... 좀 고생했지만, 세단이면 정말 뚝딱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막상 다 해놓은 걸 보니 너무 깔끔하고 마음에 든다. 

 

 

카링킷 5.0 이랑 멀티 시가잭 포트. 

우선 카링킷은 저기 USB 단자에 꽂혀있는 건데, 그냥 네모모양 얇은 보조배터리 같이 생겼다. 얘의 역할은.. 유선 카플레이를 무선 카플레이로 바꿔주는 블루투스 동글이다. 시빅의 스포츠 트림은 카플레이가 되긴 되는데, 유선으로만 연결이 돼서 차에 탈때마다 꽂는게 귀찮을 것 같아서 설치했다. 설치하고 나니 정말 아무것도 만질 것 없이, 차에 타서 시동만 걸면 바로 차랑 폰이 연결되고, 순정 화면에서 구글맵, 애플맵, 카카오톡, 전화, 유튜브뮤직 등등 다 이용할 수 있어서 너무 편하다. 

 

앞에서 설치한 대시캠은 시가잭에서 전원을 공급받는 방식인데, 그렇게 시가잭을 대시캠에 양보하고 나면, 이제 더 이상 차에 충전기를 꽂을 단자가 남질 않는다. 아니 적어도 폰 충전은 해야되는데... 싶어서 그냥 멀티 시가잭 포트를 사버렸다. 시가잭 포트 3개 + USB 5개 + USB-C 한개 로 이루어진 구성이라 정말 이제 포트걱정은 없다.

원래는 조수석쪽에 양면테이프로 붙이는 방식이던데, 마침 저 속에 집어넣으니 쏙 들어가져서 순정처럼 깔끔하게 설치되어서 매우 만족이다. 저것도 굳이 후레시 켜고 찍어서 그렇지, 평소엔 속에 들어가있고 그늘져서 보이지도 않는다.

 

 

친구가 새 차 뽑은 기념으로 사준 산타마리아노벨라 왁스타블렛! 보통 벤트에 꽂는 형식을 많이 쓰지만, 난 그게 없다 보니.. 이걸 차에 넣어두면 좋은 향기가 솔솔 난다.

 

선글라스 홀더! 이건 동생이 사줬다. 깔끔하게 자석으로 붙일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얼마전에 좁은 골목에서 우회전을 돌다가 우측 뒷바퀴 휠이 까져버렸다.ㅠㅠㅠㅠㅠㅠㅠ 자잘한 스크래치 신경쓰지 말아야지! 했지만 막상 까지니까 이거 엄청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사포로 좀 갈아내고 유광 블랙 페인트 펜으로 슥슥 했는데, 오 생각보다 엄청 잘 가려졌다. 타이어 핥아먹을것처럼 얼굴 바짝 붙이고 후레시 켜서 봐야 보이고, 그냥 봐서는 이제 어딘지 찾기도 쉽지 않다. 야호! 

 

 

  1.  우리나라의 쏘카같은 것 [본문으로]
  2. 역시나 한국의 쏘카같은 공유자동차 [본문으로]
  3. Out-the-door price: tax, tag, title, documentaion fee 등을 모두 포함한 최종 가격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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