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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7일 밤에 처음으로 스위스 땅을 밟고, 자정을 넘겨 28일에 방에 도착했다. 

짐 정리 하고 나니 새벽 3시였는데, 방에 여치처럼 생긴 벌레가 천장에 붙어있었다.

방에 도착하자마자 벌레라니... 차마 잡지도 못하고 구석에 숨어서 한시간을 내내 째려보다가 너무 피곤해 잠들었다.

아침 8시쯤 일어났는데 그 놈이 아직 그 자리에 그대로 있길래 마침 지나가던 룸메의 도움을 받아 처치했다.

앞으로 여기 두달 간 살면서 창문은 절대 열지 않을 것이다.


생활에 대한 건 따로 포스팅할거니까, 연구실에 대한 것만 우선 남겨보면,


1. 스테파니와의 첫만남!

그렇게 메일을 주고받던 스테파니 여사님과 드디어 직접 만나게 되었다. 메일함을 보니 3월부터 스테파니 여사님과 주고받은 메일이 무려 40통이다.
스테파니 여사님은 내 연구실의 행정조교(?)같은 역할인데 처음 합격 통보부터 시작해서 비행기표, 기차표 외에 스위스에 오게 되기까지 필요한 모든 것을 처리해 주었다.
INJ 빌딩에 처음 도착하고 놀랐던 건 한 층을 전부! 통째로! PARSA에서 쓴다는 거였다. 
2층에 딱 올라가면 제2공 복도 느낌이 나는 복도가 쭉 있는데 양쪽에 있는 방이 전부 이 연구실꺼다!...ㄷㄷ
교수님 오피스부터 시작해서, 행정조교가 두 분이 있는데 각각 자기 방이 있고, 심지어 박사과정들도 각각 오피스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
맞은편에는 우리 연구실 두배쯤 되는 사이즈의 오피스 두 개가 문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 두 오피스를 모두 인턴들이 사용한다.
인턴이 아마 7-8명쯤은 되는 것 같았다.



저 넓은 자리를 지금 총 4명의 인턴이 사용하고 있는데, 하트 표시가 되어 있는 곳이 내 자리다. 반대쪽 연구실은 창문으로 알프스가 보이는데 인턴 찌끄레기들 방에서는 건너편 건물이 보인다.ㅜㅜ 그래도 친근감 넘치게 다닥다닥 붙어있던 우리 연구실이랑은 느낌이 많이 다르다.


자리에 앉아서 사진 찍은 방향을 쳐다보면 아래처럼 복지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사진 왼편에 보이는 게 프린터고, 무려 칼라(!) 레이저 프린터다. 칼라!!! 심지어 종이도 그냥 A4 용지가 아니고 되게 빳빳하고 좋은 고오오오급 A4용지를 사용한다.. 뭔가 훅 선진국에 온 느낌이었다. 다같이 둘러앉아 점심이나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원형 테이블이 하나 있고, 문 옆에 공용 냉장고가 하나 있다. 책꽂이에 가려서 잘 안보이는 부분을 보면,




이렇게 소파와 함께 각종 커피머신들과 차를 만들 수 있는 장비(?)들이 있다. 역시 복지 국가 유럽!


오른편에 보이는 문으로 들어가면 같은 구조의 연구실이 하나 더 나오고, 거기에도 인턴들이 근무하고 있다.


출근은 7시까지라고 하더니, 막상 오늘 출근해보니까 다들 10시전후로 슬금슬금 나온다. 

팀 보스를 맡은 박사과정의 성향에 따라 다른 것 같은데 우리 팀은 딱히 강제성 없이 자율출퇴근인 느낌이다. 보스 최고!!

퇴근은 역시 눈치껏... 보니 7시~8시 즈음에 다들 퇴근하는 분위기라 나도 그 때쯤 같이 퇴근한다. 



2. 오자마자 팀미팅

스테파니 여사님이 자 지금부터 네 사수가 될 마리오 박사과정이야, 하고 새 사수님을 소개시켜 주었다. 음...이름은 마리오라 친근한데 왠지 무섭다. 
통성명 하고 악수하더니 갑자기 팀미팅에 들어가라고 세미나실(각 팀마다 세미나실이 있다... 유리방 예약 그런거 필요없다..)에 밀어넣더니 자기는 가버렸다! 뭐지?!
들어가니 사이트에서 수십번 봤던 얼굴들이 날 쳐다보고 있었다.

간단히 내 소개를 하고, 돌아가면서 자기 소개를 하는데 이미 사이트를 너무 많이 봐서 얼굴만 봐도 이름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게 기분이 묘했다. 

나는 마크야, 하고 소개를 하고 있는데 이미 머릿속으로 '오, 마크다' 하게 됨ㅋㅋㅋㅋㅋㅋ


사우스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니까 너무 당연하게 아 카이스트? 하고 물어봐서 좀 당황스러웠다. 

성큔콴...에스케이케이유... 하고 괜히 소심해져서 말해도 흠 모르겟넹 하는 반응이어서 더 당황ㅠ


팀 미팅에서 자기들끼리 뭐라고 하는데 1도 모르겟당ㅎㅎㅎㅎㅎ한국어로 해도 모를 내용을 영어로 하고 있으니 알 턱이 있나ㅎㅎㅎㅎ


3. 세팅

일단 메일 주소를 받았다! @epfl.ch 로 된 메일주소! 뭔가 멋지당! 이제 EPFL 학생인 척 사칭을 할 수 있을것만 같다!

그리고 가스파(GASPAR) 아이디 라는 걸 받았는데 진짜 신기한게 이게 다 연동이 되어 있어서 내 컴퓨터 비밀번호도, 메일 비밀번호도, 슬랙 비밀번호도, 그냥 모든 계정이 이거로 통일된다! 비밀번호 바꾸면 터미널 비번까지 한번에 다 바뀜 ㄷㄷ


그리고 음 EPFL 구성원들이 사용하는 인터넷에 와이파이와 VPN 연결하는 법을 배웠다.


제일 신기했던 건, 우리 연구실처럼 각자 실험피씨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서버실은 저기 어딘가에 따로 있고 각자 ssh 로 접속해서 할당받은 자기 node에 다시 ssh 로 접속해서 자기 계정을 사용한다. 다같이 진행하는 큰 프로젝트가 있다 보니 하나의 서버에서 작업해야 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래서 권한 설정도 엄청 복잡하고 그룹도 여러개고... 그룹마다 권한도 다 따로 있고... 매우 복잡했다.

스토리지도 NFS 를 사용한다고 한다. 와 이거 없어서 가상머신 이주 못해봤는데... 여긴 디폴트로 NFS를 쓴다. 

뭔가 연구를 위한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잘 잡혀있는 느낌이었다.


각자 자기 주제가 있는 게 아니라, 다 같이 큰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때문에 하루 종일 계속해서 프로젝트에 대한 열띤 토론과 대화가 오간다. 이걸 이렇게 수정하면 어떨까? 그럼 여기서 오버헤드가 생기나? 그건 누가 작업해서 누구한테 물어봐야돼. 그럼 내가 이걸 이렇게 고칠테니까 너가 그거에 맞게 너꺼에서 이 부분 업데이트 해줘. 이런 대화가 계속된다.


모두가 같은 서버에 ssh 로 작업을 하니 서로 뭘 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볼 수 있고, 서로가 작업한 걸 실시간으로 가져다 쓸 수 있고, 내가 작업한 걸 남이 가져다 쓰기 쉽게 메뉴얼과 documentation이 굉장히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한 명이 하나의 자기 주제를 하는 게 아니라, 여러 명이 다 같이 하나의 주제에 매달리다 보니 서로 계속해서 연구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오는 시너지 효과도 큰 것 같고, 작업속도도 빠른 것 같다.

처음 시작하는 주제를 과연 두달동안 캐치업은 할 수 있을지 걱정됐는데, 어떻게 공부하면 되는지 메뉴얼로 잡혀있어서 그나마 길이 좀 보이는 기분이다. 아니었다면 정말 이 큰 프로젝트에 내가 껴서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을거다.


난 고작 두달짜리 인턴인데 이 모든 코드와 프로젝트를 볼 수 있게 해주고, 심지어 수정할 수 있게 쓰기 권한까지 다 열어주는 게 좀 신기했다. 


물론 권한 받느라 온갖 오피스 돌아다니고 메일 쓰고 꼬박 이틀이 걸렸지만, 이 거대한 시스템은 정말 신기하다.


심지어 박사과정 말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아저씨(!)가 한 분 계시는데 이 분은 슈퍼천재 코딩담당인 것 같다.

박사과정들이 문제를 파악하고, 아이디어를 내서 명확하게 설명하면, 이런저런 질문을 한 다음에 언제까지 구현해줄게, 하는 대화가 너무 신기했다.



서버 접속하는 법

ssh spark@parsasrv1.epfl.ch


노드 접속하는 법

ssh n131





4. 프로젝트

내가 하는 프로젝트에 대해 한시간 넘게 화이트보드에 설명을 들었는데 사실 아직도 명확하진 않다.

대충 이해한 걸 정리해 보면,

- X86에서 ARM 을 가상머신으로 돌리려면 QEMU를 사용한다.
- instruction pipeline에 대해 CPI 를 측정하고 싶어서, QEMU에 Flexus 를 추가했다.
- 실제 하드웨어 보다 이런 시뮬레이터들은 몇 magnitude 나 느리다. 10초를 시뮬레이션 하기 위해 며칠이 걸릴 수 있다. 
- 그러지 않기 위해서, 전체 워크로드를 다 시뮬레이터로 측정하는 게 아니라, 일정 수준의 오차범위 내에 들어올 수 있도록 통계적으로 샘플링해서 측정한다.

이 때 Flexus 에서 엄청나게 많은 로그파일들을 뱉어내는데, 이걸 파싱해서 의미있는(?) 데이터를 뽑아내는 게 내 일이다.
뭐가 뭔지 아직은 잘 모르겟당...

일단 오늘까지 이틀동안 Flexpoint (Checkpoint) 생성하는 것까지 했다.

관련 논문으로는 이걸 추천받아 읽고 있다. 무려 15년 전 논문이다.

R. Wunderlich, T. F. Wenisch, B. Falsafi, and J. C. Hoe, "SMARTS: Accelerating Microarchitecture Simulation via Rigorous Statistical Sampling" Proc. of the International Symposium on Computer Architecture, pp. 84-95, 2003


5. 교수님과 미팅

교수님이랑 오늘 3시 반에 미팅이 있다고 어제 스테파니 여사님이 알려주셨다. 바쁜 분이니 시간 꼭 잘 지키라는 말과 함께...
뭔가 쫄려서 30분 전부터 괜히 예전에 썼던 CV를 다시 봐야할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시간 잘 지키라고 하길래 정확히 30분 정각에 노크하고 들어갔다.

음 생각보다 금방 끝났는데, 기억에 남는 대화는

교수님: 그래서 너 학교가 어디라구? SNU? KAIST?
나: 썽큔콴....에스케이케이유....
교: 웨얼 이즈 잇?? 노스?
나: 노우...사우스...서울에서 30분 사우스로 가면 나와요...
교: 비행기로??
나: 아뇨, 차로요.
교: 그럼 서울 아니야??
나: 음... 서울은 아닌데 엄청 가까워요. 아 저희 학교 재단이 삼성이에요.

교: Aㅏㅏㅏㅏㅏㅏㅏ 삼성!! 삼성 유니버시티!!! 굿!! 퍼펙!

나: ....^_^...


고마워요 삼성... 그냥 오늘부터 난 삼성대학교 다니는 걸로 해야겟다

그리고 더 하셨던 말은.... SNU랑 카이스트는 잘 알고, 거기 학생들은 몇 가르쳐 봤고, 제자 중에 서울대 교수님도 있는데, 너희 학교는 처음 들어본다.

그래서 잘 모르겠다. 너를 통해서 새로운 학교를 알게 되어 좋은 것 같구 너가 잘 하면 앞으로 너희 학교 친구들을 더 관심있게 볼 수 있게 될 것 같다...?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졌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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