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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8월 8일 - 9일, 1박 2일로 체르마트를 다녀왔다.  

 

체르마트는 날씨가 정말 모든 것을 좌우하는 여행지라 날짜를 정말 고심해서 골랐는데, 마침 지난주에 (1) 구름 없이 맑은 날 (2) 달빛이 전혀 없는 월삭 (3)  주말 이 모두 겹친 가장 이상적인 날짜가 만들어졌다. 구름이 없어야 하는 건 당연 마테호른의 꼭대기를 선명히 보기 위해서고, 달빛은 밤하늘 은하수를 선명하게 보기 위해서다. 

 

 

 


체르마트

 

 

일요일 아침, 로잔에서 체르마트로 1박2일간의 여행을 시작했다. 

스위스에 도착한 후로 처음으로 당일치기가 아닌 여행이라, 계획하면서 며칠 내내 기대를 많이 했다. 

 

아쉽게도 체르마트 지역은 통째로 드론이 불가능한 비행금지구역이라 이번엔 드론을 챙기지 못했다. 

 

 

 

기차를 두 번 갈아타고 도착한 체르마트. 

 

같은 스위스인데도 입구부터 아기자기하고, 기차를 내리자마자 바로 관광지의 한 가운데에 와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더욱이, 체르마트는 청정마을로 자동차 운행이 금지되어있어서, 시내 곳곳에 조그만 전기버스가 돌아다니는 데 이 독특한 버스가 체르마트 특유의 매력을 배로 만들어준다. 

 

 

 

 

 

출발전부터 메테오 스위스를 보고 예상은 했지만, 날씨가 정말 완벽했다.

마테호른 꼭대기가 선명히 보이는 것을 확인하고, 수네가로 가는 푸니쿨라 정류장으로 향했다. 

 

 

내 이번 일정은, 

  • 체르마트 ➔ 수네가 : 푸니쿨라로 이동
  • 수네가에서 라이호수 구경하기
  • 수네가 ➔ 블라우헤르트 : 케이블카로 이동
  • 블라우헤르트에서 블라우제 호수 구경하기
  • Fluhalp 산장에서 1박을 하면서 은하수 & 황금호른 구경

으로 이루어져있었다.

 

Blauherd와 Rothorn 사이에 있는 Fluhalp 산장에서 묵고 나면, 다음날 다시 블라우헤르트와 수네가를 거쳐서 체르마트까지 내려와야 하는데, 이렇게 이틀에 걸쳐서 왕복을 하더라도, 체르마트 <--> 블라우헤르트 왕복 티켓을 구매해서 나눠 쓸 수 있다. 

 

나는 하프페어를 적용받아서 단돈 27.5 프랑에 구매할 수 있었다. 

 

 

 


수네가

 

 

 

 

체르마트에서 수네가로 올라가는 푸니쿨라는 정말 롤러코스터가 따로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가파른 경사를 쭉 올라가는 조그만 기차다.

올라가는 내내 딱히 뷰를 볼 수는 없고, 계속해서 터널 안에만 있으니 자리는 왼쪽 오른쪽 어딜 앉든 전혀 상관없다. 난 그것도 모르고.. 뷰를 찍겠다고 타임랩스를 걸어두었다가 실망했다.

 

푸니쿨라를 타면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않아 순식간에 수네가에 도착한다.

 

 

 

 

수네가 정류장에서 내리자마자 마테호른 꼭대기가 반겨준다. 그런데 표지판을 읽다보니 익숙한 단어..! 제주..!?

스위스의 마테호른을 배경으로 제주 올레길에 대한 설명을 읽게될 줄은 몰랐다. 

외국에서 한국적인 걸 보면 괜히 반갑고 그런 마음.

 

 

 

수네가역에서 라이호수까지 내려가는 길. 

5분정도의 짧은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바로 라이호수가 있다. 

 

 

 

 

호수 바로 앞에 선베드가 여럿 놓여있는데, 자리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모든 선베드가 이미 만석!

적당히 눈치껏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앉아있던 사람이 일어날 것 같으면 잽싸게 근처에서 대기하다가 선베드를 차지할 수 있었다. 

 

집에서 미리 준비해 온 샌드위치 도시락이랑 커피를 마시면서 이 곳에 누워 여유도 즐기고 인스타 라이브방송도 켜서 한국의 수많은 친구들의 마음에 염장을 질렀다. 

 

 

 

 


블라우헤르트

 

 

어느정도 여유를 부렸으면, 블라우제 호수로 향한다. 

 

스위스 여행의 성수기인 기간인데도 코로나 때문에 예전만큼 관광객이 많지는 않은지, 케이블카도 대기 없이 바로바로 탈 수 있었고, 혼자서 여유롭게 한 칸을 차지할 수 있었다.

 

 

 

 

 

 

블라우헤르트 정류장에 내려서 블라우제까지는 30분정도..? 하이킹을 해야 한다. 전반적으로 가파르지 않고 길이 잘 닦여있어서 무난하게 도착할 수 있다.

 

 

그렇게 도착한 호수는....

 

 

 

진짜 역대급! 완전 예쁘다!

햇빛을 받아서 반짝반짝 빛나는 호수 뒤로 마테호른이 떡 하니 서 있는데, 심지어 하늘의 구름마저 예술이었다. 

 

사진의 아래쪽을 보면 호수 속의 돌들이 다 비쳐 보일 정도로 물도 정말 깨끗하고 맑았다. 

 

나 홀로 여행이라 사진찍어줄 사람이 없지만, 신나게 스마트폰을 삼각대에 고정시키고 타이머랑 갤럭시워치를 보면서 호수 앞에서 혼자 재밌게 한참을 놀았다. 

 

 

 

 

 

 

 

블라우제에서 체르마트까지 다시 내려가는 케이블카가 오후 4-5시면 끊겨서 5시즈음이 되자 호수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전부 사라지고, 저 예쁜 풍경 속에 오롯이 나 혼자 남았다. 이것이 바로 산 중턱의 산장에 묵는 자의 특권이 아닐까.

 

자연 속에 앉아 혼자 이런저런 생각도 하고, 호수의 소리, 새 소리, 풀벌레 소리들을 듣다가 슬슬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Fluhalp



 

내가 묵은 곳은 블라우제에서 약 15분정도 걸어 올라가면 나오는 Fluhalp 산장이다. 

도미토리 기준 1박에 인당 95프랑이었는데, 첩첩 산중에 갇히게 되는 산장의 특성상, 저녁과 아침식사까지 모두 포함된 가격이다. 

스위스의 미친 외식물가를 생각했을 때, 이 정도면 나름 합리적 가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블라우제에서 Fluhalp 까지 가는 길은 멀진 않았지만, 이미 긴 하루를 보낸 끝이라 발걸음이 무거웠다. 얼른 들어가서 자고 싶은 마음.

 

 

도착한 산장은 생각보다 꽤 괜찮았다.

우선 체르마트와 블라우제가 모두 내려다보이는 환상적인 뷰를 질리도록 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역시나 혼자 삼각대와 타이머를 맞춰가며 신나게 그네를 타고 놀고 있는 박사과정(27세).

 

나는 혼자 여행하는 거기도 하고, 어차피 새벽에 별을 보러 밤새 호수에 다녀올 생각이었던지라 비용을 최대한 절약하고자 도미토리를 예약했다. 그런데 나름 동양의 유교걸인지라, 남녀 혼숙인 도미토리는 처음 써봐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인터넷에 아무리 검색을 해봐도 후기가 하나도 뜨지 않고... 

 

그렇게 입성한 도미토리는 아래같은 모습!

거의 15명정도가 다닥다닥 한 방안에 들어가는 방식인데, 콘센트도, 개인 수납장도, 가림막도, 뭐 아무것도 없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전반적으로 충분히 깨끗했다는 것!

화장실은 층마다 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곳이 있었는데, 벌레가 득실거려도 이상하지 않을 산 중턱의 산장 치고 매우 관리가 잘 되어있었다. 

 

하지만 인터넷 후기를 보니 2인이 들어가는 일반 방들은 마테호른 뷰가 정말 끝내주는 것 같아서, 혹시라도 만약에 이곳에 다시 올 일이 있다면 굳이 도미토리를 다시 예약하진 않을 것 같다. 아침에 이불을 돌돌 말고 창문을 통해 황금호른을 볼 수 있다는 건 비용을 충분히 지불할 만 한 메리트일 것 같다. 

 

화장실. 낡았지만 그래도 거미줄이나 벌레시체 하나 없이 깨끗한 편이었다. 
갬성적인 인테리어는 덤!

 

 

그래도 혼숙 도미토리는 생각보다 무난했다. 

다들 서로서로 정말 배려심이 넘쳐서, 밤 10시즈음이 되자 불빛 하나 없이 소등을 해 버렸고, 다들 핸드폰 불빛조차 조심하며 서로 배려하는 분위기였다. 발 소리 하나하나 문소리 하나하나 신경쓰고 배려하면서 서로에게 민폐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따뜻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저녁 식사 in Fluhalp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Fluhalp 산장에서의 숙박은 저녁식사와 아침식사가 포함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저녁이 코스로 제공되는데, 꽤 음식이 괜찮다는 평이 많아서 기대를 많이 했다.

 

스위스에서 코스요리라니!! 얼마만의 외식인가!

 

저녁 시작은 오후 7시. 체크인 할 때 알려주고, 시간에 꼭 맞게 내려와달라고 당부를 받는다. 

식당에 들어가면 이미 세팅이 다 되어있고, 자기 이름이 있는 곳을 찾아 앉으면 된다. 

 

 

시작하자마자 첫 메뉴는 따뜻한 토마토수프에 빵.

마실 게 필요하냐고 물어보길래 작은 맥주를 하나 주문했다. 

메뉴판을 딱히 안가져다주고, 계산을 하지도 않길래 이게 과연 공짜인건지 돈을 내야하는건지 얼마인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는데 아무리 비싸도 맥주는 마셔야겠다 싶어서 그닥 상관은 없었다. 

 

결과적으론, 체크아웃을 할 때 영수증에 청구되었다. 작은 맥주 4CHF. 일반 가격보다는 조오금 비싼편.

 

기울어가는 강한 햇빛을 받아서 맥주잔이 영롱하게 빛나는데, 정말 내 마음을 딱 대변한 장면이었다... 

고단한 하루를 뒤로하고 마주한 저 한잔의 맥주가 그렇게 꿀맛일수가 없었다.

 

 

 

다음은 샐러드. 무난했다. 

 

 

 

메인은 파스타에 닭고기, 그리고 절인 양배추가 들어있는 베이크..?

 

피곤한 차에 맥주를 마셔서 그런지 눈꺼풀을 들고 있기가 힘들정도로 졸음이 몰려온 데다가, 전반적으로 조금 짠 편이라 다 먹지는 못했다.

그래도 스위스의 외식수준을 감안하면 매우 훌륭한 편이 아니었나 싶다.

 

 

 

후식은 티라미수 크림. 아이스크림 아니고 크림이다.. 

크림을 숟가락으로 퍼먹어보는 건 또 새로운 경험이었다.

 

 


 

 

 

 

저녁식사를 딱 마치고 나니 슬슬 해가 지고 있었다. 숙소 뒤쪽으로 올라가서 마테호른과 숙소 전경을 한컷.

이러고 나니 더 이상 할것도 없고, 새벽 3시쯤에 마테호른 위에 걸릴 은하수를 보기 위해 저녁 8시즈음 일찌감치 씻고 침대에 누웠다. 

 

 

 

첫 혼숙도미토리라 긴장한 탓인지 약 6시간 정도를 누워있었지만 제대로 잠들지 못하고 졸다 깨다 몽롱하게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그러다 새벽 3시가 되었을 때 담요를 둘둘 두르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호수로 향하기 위해 산장을 딱 출발했는데!

 

 

.. 생각보다 너무 춥고 어두웠다. 

은하수를 찍기 위해서는 달빛이 없어야 한다길래, 달이 전혀 뜨지않는 월삭을 골랐더니, 정말 산장밖은 단 한줄기의 빛조차 찾을 수 없는 거의 완벽한 암흑이었다. 담력체험도 아니고... 이 어둠을 뚫고 도무지 20분 거리의 호수까지 혼자 하이킹을 갈 엄두가 절대 나지 않았다. 심지어 날씨는 이미 영하를 찍었고, 테라스 테이블은 전부 얇은 얼음으로 코팅되어 있었다. 

 

 

내가 생각보다 쫄보였음을 깨닫고, 산장 바로 앞 테라스에서만 은하수 사진을 찍었다. 

 

 

 

 

그래도 DSLR 도 아니고 스마트폰으로 찍은 것 치고 너무 멋진 사진이 나와주었다. 

노이즈가 자글자글하긴 해도 이 정도면 매우 만족!

 

 


다음날

 

 

다음날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게, 은하수를 찍고 세 시간쯤 더 누워있다가, 일출을 찍으러 다시 나왔다. 

아침 해가 떠오르면서 마테호른의 봉우리부터 햇빛이 비추며 황금색으로 물들이는데, 이걸 봐야 마테호른을 진정으로 마스터했다고 할 수 있다. 

 

 

아래는 오들오들 떨면서 찍은 타임랩스 영상.

 

 

 

 


 

황금호른까지 찍었으니 이제 산장에서의 볼일은 끝났다.

아침 조식을 대충 먹고 [각주:1] 다시 블라우제 호수를 거쳐 블라우헤르트 정류장으로 출발했다. 

 

 

 

하루만에 다시 만난 블라우제 호수. 안녕!

 

 

 

푸니쿨라를 타고 내려올때는, 모두가 산을 오르기 시작하는 아침시간에 나 홀로 내려가는 열차를 타서 이 큰 푸니쿨라를 통째로 전세내고 탈 수 있었다. 

 

 

체르마트까지 내려온 후에는, 바로 돌아가기가 조금 아쉬워 체르마트 뷰포인트를 올라갔다 왔다.

 

 

 

이정도면 체르마트도, 마테호른도 충분히 눈에 담았겠다, 마을을 한두시간 더 산책하다가 로잔으로 돌아왔다.

 

1박 2일간의 체르마트 여행, 성공적!

  1. 생각보다 부실했다. 시리얼, 빵, 달걀, 끝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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