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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5일에 스위스에 도착했으니 이제 스위스에 온 지 일주일이 거의 다 되어간다. 별 일은 없지만 모처럼 해외여행을 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일기를 써봐야겠다.

 


Temporal Housing

 

https://www.epfl.ch/campus/services/housing/en/housing-options/short-term/rooms-estudiantines/

 

Temporary housing at les Estudiantines

Temporary housing at les Estudiantines The 7 fully equipped individual rooms, located on the side of EPFL campus, can be rented on a week basis.

www.epfl.ch

 

내가 계약한 방은 6월 1일부터 입주를 할 수 있어서, 그 전까지 일주일 정도 머무를 곳이 필요했다. 살인적인 물가의 스위스에서 일주일이나 호텔이나 에어비엔비를 잡았다면 어마어마한 돈이 깨졌을 텐데, 다행히 학교에서 제공해주는 임시 숙소가 있다. 이 근방이 워낙 집을 잡기가 어렵기로 악명높다 보니 학교도 학생들의 그런 고충들을 알아서, 다행히 학생들이 마냥 길에 나앉게 두지는 않는 모양이다.

집을 잡기 어려운 건 여러 이유가 있는데, 월세가 하도 비싸서 이런 구린 곳을 이 돈을 주고 살아야 한다고?? 를 납득하지 못해서 초반에 꽤 많은 시간을 날리게 된다. 매물을 끝없이 뒤적이다 보면 그마저도 적응이 되어서, 이 정도면 그래도 연락해볼까..? 싶은 곳이 생기기 시작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인데, 연락을 한다고 해도 선착순으로 계약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집주인이 면접을 보고 원하는 세입자를 고르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 외국인인데다 프랑스어도 못하는 입장에서 당연히 불리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스위스 내에 보증인이 있어야 한다던지, 거주허가증이 있어야 한다던지 등등 계약에 필수적인 각종 서류들이 많은데, 스위스에 도착해서 관공서를 직접 방문해 신청하고 발급받을 수 있는 서류들이라 미리 집을 온라인으로만 구하는건 정말 어렵다.

어쨌든 나는 저 위의 링크에 나와있는 임시 숙소에서 일주일을 머물고, 6월 1일부터 나의 새 보금자리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Les estudiantines

임시 기숙사인 Les estudiantines 는 일주일에 370CHF, 한국 돈으로 46만원이라는 무시무시한 가격을 자랑하는데, 그냥 딱 평범한 1인실 기숙사 느낌이다.

싱글 베드 하나와 서랍장, 옷장, 작은 책상, 책상 위에 스탠드 같은 기본 가구들이 비치되어 있고, 다행히 이불이나 베게도 준비되어 있다. 화장실도 각 방마다 개인 화장실이 있는데, 예전에 아주 잠깐 살았던 고시원 화장실과 똑 닮은 아주 작은 화장실이다. 그래도 다행히 전체적으로 깨끗하고 깔끔했다.

다이소에서 냉감 베게 커버를 사 왔는데 사이즈 미스..! 베게가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주방은 7명이 함께 공유하는데, 이전 사람들이 버리고 간 후라이팬이나 냄비같은 조리도구들이 있긴 하지만 쓰기 좀 찝찝한 상태라 사실상 일주일동안 요리는 할 생각도 안했다. 냉장고는 작은 것 두 개를 7명이서 공유해서 사용하는데, 냉장고 안에 각 방번호가 써 있는 작은 바구니가 있어서 그 안에 내 것을 구분해 담아둘 수 있도록 되어있다. 한국에서 가져온 자잘한 냉장식품들이 몇 있어서 여기에 보관해 둘 수 있었다. 전자렌지와 오븐도 비치되어 있고, 4칸짜리 인덕션이랑 커피포트도 있다.

 

첫 날 Migros에서 시리얼과 우유, 요거트, 전자렌지에 돌려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식품 두개, 컵라면 하나를 사서 일주일동안 요긴하게 먹었다.

 

보통 이렇게 전자렌지로 뚝딱 해 먹을 수 있는 걸 사다 먹었다.
컵라면 최고다.. 4천원쯤 하는 바가지 가격이지만 그래도 저 위의 파스타 8천원 주고 먹는거보다 이게 낫다.
밤맛 요플레. 맛있다.

 

 

건물 안에 와이파이는 없지만, 인터넷에 연결된 랜선이 있어서 노트북에 랜선을 꽂고 노트북에서 와이파이 공유를 켜면 핸드폰이랑 아이패드에서도 노트북이 쏴주는 와이파이를 쓸 수는 있다. 그런데 요즘 노트북은 대부분 랜 포트가 없는 경우가 많아서.. 미리 허브나 독을 준비해오지 않았다면 인터넷 없는 일주일을 보낼 뻔 했다.

랜선도 꽂으면 바로 연결되는 게 아니라, https://loginestu.world-connect.ch/102/portal/ 라는 사이트에서 아이디랑 패스워드를 치고 인증을 받아야 인터넷이 들어온다. 아이디랑 패스워드는 하우징을 예약할 때 이메일로 받았다.

 

1층이라 뷰가 좋지는 않다. 그나저나 스위스는 왜 정말 방충망이라는 문물을 모르는 것일까?

 


연구실

코로나 시국이라 아직 다들 출근은 거의 안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일단 CAMIPRO 카드와 연구실 열쇠를 받았다.

CAMIPRO 카드는 학생증 같은 건데, 여기에 돈을 충전해서 캠퍼스 안에서 다양하게 쓸 수 있다. 이전에 인턴으로 왔을 때도 받았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데, 건물 출입태그 찍을때랑, 프린트 할때, 학식 사먹을때 주로 썼던 것 같다.

 

 

연구실은 총 세 명이 같은 공간을 쓰고 있는데, 한 친구는 Summer@EPFL 인턴으로 미국에서 온 친구고, 다른 한 사람은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꽤 넓은 공간인데(저 큰 책상이 6개가 놓여있으니까) 3명이 쓰니 나름 쾌적하게 일할 수 있다. 혼자 방에 갇혀서 자택근무를 한 게 1년이 훌쩍 넘었는데, 오랜만에 출근을 해 보니 창문으로 해도 잘 들어와서 환하고 탁 트여있어서 책상에 앉아있을 맛이 좀 난다.

 


Lausanne

3년 전 Summer@EPFL 인턴으로 이 곳에 왔을 때 함께 뭉쳐 놀던 친구들이 나까지 포함해서 총 5명이었는데, 그 중 3명이 지금 EPFL 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다. 이렇게 다시 재회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3년만에 다섯 중 넷이 다시 모일 수 있었다.

 

토요일에 로잔 시내에서 만나 이것저것 장도 보고 돌아다녔는데, 보면 볼 수록 로잔 시내는 너무 내 취향이다..! 아기자기하게 예쁜 유럽형 건물과, 주말마다 여는 다양한 마켓들, 그리고 모든 게 근처에 있는 도시의 특성까지! 그 날 로잔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내 다음 숙소가 로잔시내의 한 가운데에 있다는 게 갑자기 너무 다행스럽고,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린 그 날 아시안 마켓을 세 곳이나 돌아다니고, 다양한 식료품점이랑 백화점들을 구경했는데, 순식간에 10000보를 채웠다. 얼마만에 이렇게 걸은 건지 모르겠다. 이것저것 관심가는 건 많았지만, 며칠 후에 임시숙소에서 진짜 숙소로 이사를 가야하니 짐을 절대 늘리면 안된다는 생각에 아이쇼핑만 했다. 그래도 나는 이 모든 게 다음주면 집근처라구!

 

 


사족

그런데 3년 전에 이 곳에 왔을 때랑, 지금 다시 시작한 스위스 생활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느껴지고 있다. 이미 한 번 왔던 곳이라 그런 건지, 코로나 때문인지, 오랜 해외생활로 더 이상 해외여행에 대한 큰 갈망이 없어서인지, 아님 그냥 나이를 더 먹어서인지.

3년 전의 나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신이 나서 드론을 가지고 집 근처를 열심히 찍으러 다녔고, 없는 시간을 쪼개가면서 퇴근한 후에도 온 동네를 쏘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지금은 첫 하루이틀은 피곤하다고 쓰러져있었고, 그 뒤의 며칠도 그냥 집에 쳐박혀서 일하다가 자다가, 연구실 좀 갔다오는 지루한 일상을 벌써 시작해 버린 기분이다. 딱히 설레는 것도 없고, 기대되는 것도 없고, 일단 피곤하고 쉬고싶다.

그나마 다행인 건, 스위스의 풍경은 너무 아름다워서 그런 나조차도 문득 한번씩 고개를 들게 만든다. 토요일의 로잔 나들이가 그랬고, 퇴근길에 보는 레만호수와 그 너머의 눈 쌓인 하얀 알프스산맥이 그러했다.

 

사실 아직 스위스에 와 있는 게 별로 실감이 안되는 것 같다.

 

눈을 뜨면 늘 익숙하던 그 천장이 보일 것 같은데 시간이 언제 이렇게 지나서 벌써 여기에 와 있는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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