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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글에도 언급했었지만, 내가 스위스에 도착한 건 5월 25일. 새 집에 입주할 수 있는 건 6월 1일 오전.

그 사이의 도착 직후 첫 일주일은 학교에서 제공해주는 임시거처에서 지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임시숙소는 '월요일' 에만 체크인/체크아웃 을 할 수가 있는 이상한 룰이 있어서, 나는 5월 31일 월요일 아침 10시 전까지 이 임시숙소에서 체크아웃을 해야했다. 

입주 할 새 원룸은 6월 1일부터 들어갈 수가 있어서, 결과적으로 5월 31일부터 6월 1일까지 하루동안 지낼 곳이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정착 일정

 

먼저, 임시 숙소에 체크아웃을 하루 늦출 수 있는 지 알아보았지만.. 얄짤 없었다. 내가 쓰고있는 방이 바로 뒤에 예약이 이미 되어있는 상황이었고, 무조건 월요일 에만 체크인/체크아웃이 가능한 일주일 단위 계약이라 방법이 없었다. 실제로 나는 25일에 도착했지만, 임시숙소의 계약은 24일 월요일부터 7일치 방세를 내기도 했다. 

 

두번째로, 새로 입주할 원룸의 체크인을 하루 당길 수 있는 지 알아보았는데.. 역시나 실패했다. 부동산 측에 여러 번 메일로 물어보았지만 묵묵부답이었고, 급한 마음에 사무실에 일단 무작정 찾아가보았는데 담당자가 없다고 해서 헛수고 스택도 하나 쌓였다. 그 후 다시 메일로 물어보았더니 안된다고 답장이 왔다. 

 

 

결국 일을 쉽게 처리할 방법은 없었고, 그냥 1박을 어디서든 해결해야 했다. 그리고 여기서 함께 고려해야 하는 건, 나는 23kg 캐리어가 무려 3개! 더불어 17kg 짜리 기내용 캐리어와 백팩까지!

이 100kg 를 훌쩍 넘는 짐들을 들고 숙소를 세번이나 옮겨야하는 고난의 일주일이 되어버렸다. 어떻게든 경로와 고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말 도착 직후 어마어마한 고민들을 했다..

 

 

우선 첫번째 결정은, SBB 를 통해 공항에서 로잔역까지 보내두었던 23kg 캐리어 두개를 가능한 늦게 찾는 거였다. 당장 필요한 게 들어있는 것도 아니고, 로잔역에서 최대 4일까지는 무료로 보관을 해 준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25일에 스위스에 도착하자마자 공항에 있는 SBB 사무실에서 보낸 짐이 로잔역에 도착한 건 27일. 그리고 그때부터 following four days 간 무료 보관이니까, 31일에 찾아도 된다! 심지어 더 늦게 찾고싶다면 개당 추가비용을 내면 더 맡아준다고도 했다. 

 

두 번째 결정은, 1박을 묵을 호텔을 잡는 거였다. 사실 그냥 짐 다 바리바리 싸들고 연구실에서 밤을 새볼까도 싶었는데.. 아무래도 짐도 많고 익숙하지도 않은 캠퍼스와 연구실에서 너무 고생할 것 같았다. (당장 정수기가 어디있는지도 모름)

대신 호텔을 새 숙소와 가능한 가까운 곳에 구했다. 캐리어를 모두 끌고 어떻게든 호텔까지만 도착하고 나면, 다음 날은 호텔에서 원룸까지만 짐을 옮기면 되니까! 

 

그렇게 고난의 이사가 시작되었다.

 

 


임시숙소(Les Estudiantines 체크아웃)

임시 숙소인 Les Estudiantines 는 기숙사의 일부기 때문에, 캠퍼스의 가장 테두리인 남쪽에 위치해있다. 반면, 체크아웃을 위한 사무실이 건물 내에 따로 없어서 체크인/체크아웃 과정은 SwissTech Hotel 이라는 호텔 리셉션에서 해야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짐을 전부 정리하고, 시리얼로 아침도 먹고, 23kg 캐리어 한개와 17kg 캐리어 하나, 백팩을 모두 가지고 호텔 리셉션까지 이동했다. 

 

자료화면 1

오른쪽 두 개의 큰 캐리어는 아직 기차역에서 나를 4일째 기다리고 있는 중이고, 나는 왼쪽의 그림처럼 큰 캐리어 하나와 작은 캐리어 하나, 백팩을 들고 첫 숙소에서 체크아웃을 하러 호텔 리셉션까지의 여정을 시작했다. 

 

 

체크아웃 하러 이렇게 멀리가야한다니

 

1km 정도니까 고생은 하겠지만 사실 못 갈 거리는 아니다. 중간에 계단이라도 있으면 노답이기 때문에, 전날 미리 계단을 통하지 않는 경로들과 엘리베이터의 위치들을 봐 두었다. 오르막길이 있어서 고생을 좀 하긴 했지만, 어쨌든 스무스하게 도착!

SwissTech Hotel에서 무사히 아침 9시 반 즈음에 체크아웃을 했다. 

 


Hotel des Voyageurs

내 숙소는 Lausanne-Flon 근처에 있고, 캠퍼스는 EPFL 역에 있는데, M1 메트로로 9정거장으로 연결되어 있다. M1 은 메트로라는 이름답게 지하철이랑 거의 흡사하지만, 지하가 아니라 지상으로 다닌다. 트램이랑은 또 조금 다른게, 트램은 도로로 다니는데, 얘는 그래도 지하철처럼 철길로 다닌다. 그냥 우리나라에서 지상으로 다니는 1호선 지하철이랑 비슷한 느낌. 

 

SwissTech 호텔에서는 나오자마자 바로 M1 메트로를 탈 수가 있다. 저 어마무시한 짐(자료화면 1의 왼쪽 그림)을 모두 들고 EPFL 역에서 메트로를 타고 Lausanne Flon 역에서 내렸다. 내린 후엔 Hotel des Voyageurs 까지 250m 정도만 이동하면 되는 거리였다. 

 

 

Les estudiantines의 체크아웃이 오전 10시까지라, Hotel des Voyageurs 에 도착한 게 대략 10시 반쯤이었는데, 보통 호텔 체크인은 오후 2시는 넘어야 하니까 혹 오전에 체크인을 할 수 있는지를 미리 메일로 물어보았다. 혹 안되더라도 짐이라도 맡겨두고 어디 카페에라도 앉아있을 생각이었다. 메일 답장이 "장담은 못하겠지만 노력은 해볼게"라고 애매모호하게 와서 조금 걱정스럽긴 했는데, 다행히 가자마자 체크인 성공!

 

다행히 숙소는 저렴하게 구한 것 치고 엄청 깨끗하고 아늑했다.

오랜만에 호텔방을 보니 여행을 온 것 같기도 하고.. 마음이 다시 붕 뜨면서, 며칠내내 마이너스를 찍던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저 무거운 짐들을 끌고 1km를 걷고, 지하철을 9정거장 이동하고, 다시 250m 를 걸었던 터라 피곤이 급격히 몰려와 침대를 보자마자 푹 엎어져버렸다. 

 

그리고 눕자마자 바로 든 생각. 

 

"아, 냉장고에 있던거 하나도 안챙겨왔다."

 

이전 숙소에서 체크아웃을 하면서, 공용 주방의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걸 전부 놓고온거였다.. 내 콜드브루랑 핫바, 우유, 탄산수... 

다른 건 몰라도 콜드브루는 당분간의 카페인을 책임져줄 매우 소중하게 한국에서부터 들고 온 거라 얼른 다시 가지러 가야했다.

 

급한대로 호텔에 메일을 보냈고, 다음 입주자가 들어오기 전까지 얼른 와서 다시 가져가라는 메일을 받았다.

결국 다시 지하철 역 9개를 되돌아가서, SwissTech 호텔에 가서 키를 받은 후, 1km 를 걸어 Les estudiantines 에 도착.. 냉장고에서 내 소중한 물건들을 되찾고, 다시 1km 를 걸어 SwissTech 호텔에 키를 반납했다. 그래도 짐은 호텔에 전부 두고 몸은 가벼워서 다행이었다.

 

더불어 이 날은 31일, 로잔역에서 내 캐리어 2개를 맡아주는 4일중 마지막 날이다. 아까 본 자료화면에서 아래 두개의 캐리어가 기차역에서 날 일주일째 기다리고 있었다. 

 

냉장고에서 물건들을 찾고 돌아오는 길에 Lausanne 역에 들려서 캐리어를 맡길 때 받았던 서류를 보여주고, 캐리어 두 개를 되찾아 호텔방으로 돌아왔다. 그리하여 드디어 호텔방에는 내가 한국에서 가져온 짐 토탈 100kg 가 모두 모여있게 되었다. 

 

이 때 갤럭시워치에 뜬 걸음수가 만 오천. 아직 낮 12시도 채 되지 않았는데 오전동안 만 오천걸음을 걸었다. 그리고 그 중 거의 대부분은 어마어마하게 무거운 캐리어와 백팩이 함께했고. 정말이지 당장 쓰러져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피곤함이었다. 정말이지 곧바로 쓰러져서 자고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저녁 8시에 있을 논문 리뷰 미팅이 날 기다리고있었다.

 

논문도 채 다 못읽었고, 리뷰도 써야하고, 할일이 산더미라 쉴 틈이 없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30분쯤 쉬고 바로 논문을 읽기 시작했다. 오후 5시쯤이 되니 하루종일 고생만 죽어라 하고 여태 밥도 못먹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고, 집 앞 COOP 마트에서 오븐구이 치킨을 한 마리 사 왔다. 거기다 오늘 너무 피곤했으니 보상의 의미로 스타벅스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란데 사이즈도 한잔. 스위스에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유일하게 구할 수 있는곳이 스타벅스인데,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이 무려 8700원이다. 이렇게 큰 맘먹고 사먹는게 아니라면 사실 맨 정신으로는 사먹기 쉽지 않다. 

 

그리고, 먹자마자 바로 체했다. ㅋㅋㅋㅋㅋㅋㅋ 논문 미팅은 두 시간도 안남았는데 먹은 거 죄다 토하고 머리는 깨질듯이 아프고, 주섬주섬 챙겨먹은 약은 약대로 또 다 토하는.. 몸을 혹사시킨 끝에 결국 벌을 받고야 말았다. 

 

준비를 결국 제대로 다 하지 못한 채 8시 미팅을 들어갔고, 미팅이 끝나자마자 다시 리뷰를 쓰기 시작해서.. 결국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일을 마무리하고 잠에 들 수 있었다. 

 

 


드디어 내 방!

다음날 6월 1일! 드디어 내 원룸으로 입주를 하는 날이다. 이 날의 계획은 이랬다. 

  1. 호텔에서 조식 먹기
  2. 사무실에 가서 열쇠 받아서 호텔로 돌아오기
  3. 호텔에서 원룸으로 짐 옮기기
  4. 호텔 체크아웃 (~10AM)
  5. 원룸에서 짐 풀기

10시에 체크아웃 하기 전 까지 1에서 3을 모두 클리어해야 해서, 4시간도 채 못자고 아침 7시에 일어났다. 

 

1. 호텔에서 조식 먹기

 

평범한 유럽식 조식이지만, 너무 맛있고 배부르게 잘 먹었다. 스위스에 도착한 후로 며칠 내내 우유에 시리얼만 말아 먹다가, 달걀 스크럼블에 따듯한 빵, 그리고 커피까지!

일정을 시작하기 전에 다행히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 (그리나 이것이 이 날의 마지막 식사였다)

 

 

2. 열쇠 받아오기

입주를 하기 전에 우선 사무실에 가서 계약서에 마저 싸인을 하고 키를 받아야 했는데, 사무실까지는 왕복 1.5 km 정도.. 짐을 들고 갈 건 아니고 맨 몸으로 가서 열쇠만 받아오면 되니 아침도 든든히 먹었겠다, 산책하기 나쁘지 않은 거리다. 

 

사무실에 가서 별 특별할 일은 없었고, 이것저것 서류들에 싸인을 하고, 바로 열쇠를 받았다. 

공동현관 열쇠, 집 열쇠, 우편함 열쇠, 쓰레기장 열쇠.. 가 각 2개씩, 원룸 하나 계약하는데 8개나 되는 열쇠 꾸러미를 받았다는 게 좀 충격적이긴 했다.

 

 

3. 호텔에서 원룸으로 짐 옮기기

힘들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진짜 힘들어서 죽는 줄 알았다. 

더욱이 이번에는 어제 찾은 짐들 덕분에 캐리어가 무려 4개! 백팩도 하나! 

 

다행히 집에서 200미터정도 떨어져있는 호텔을 잡았기에 망정이었지, 아니면 정말 쓰러졌을 거다. 

짐이 무겁고 많아서 총 세 번을 왕복했는데, 짐을 가지고 집까지 가는 길이 가파른 오르막이라 더 힘들었다.. 

 

그리고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내 원룸이 2층이라 현관에서부터 계단을 총 세번 올라가야 하는데,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것... 

결국 나는 100KG 이나 되는 짐을 하나하나 들고 계단 세개를 등반했다.. 나중에는 너무 힘들어서 가만히 있어도 손이 호달달 떨리는 데 나중에라도 중간에 숙소 옮길 생각이 싹 사라져버렸다. 

 

 

 


이렇게 나의 원룸 입주기는 가까스로 끝이 났다.

다음 편은 원룸을 사람 사는 집으로 만드는 과정들을 담아볼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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