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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 온 지 4주차가 다 되어간다. 스위스에 와서 맞은 주말도 이로서 네번째인데, 드디어 처음으로 평범한 주말을 보냈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주말이 사실 대단히 여유로웠던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렇기에 드디어 평범한 주말을 맞은 기분이었다.

 

첫 주 주말에는 도착하자마자 숙소를 옮겨다니느라 정신이 없었고, 두번째와 세번째 주에는 일이 몰아치는 바람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주말에도 밤을 샜었다. 각종 정착관련 서류업무들이 해결이 안되고, 그것들을 평일에 해결하려다보니 자꾸 해야할 일이 주말로 밀렸던 탓이다. 

 

 


 

이번 주는 특별한 일 없이 평범한 대학원생의 일상을 보냈다.

 

토요일에는 여유를 가지고 두 시간 정도 로잔 시내를 둘러보며 아이쇼핑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 집은 로잔시내의 가장 복작복작한 거리의 2층에 위치해있어서, 반경 20분 이내에 구경할 가게도, 큰 성당도, 식당도, 카페도 아주 많다. 

 

오랜만에 로잔대성당을 다시 찾았다.

다시 로잔을 찾은 만큼 로잔의 랜드마크를 다시 구경하고 와야할 것 같은 기분이 숙제처럼 남아있었는데, 드디어 숙제 클리어!

 

 

집 바로 앞에 있는 박물관 건물인데 유럽느낌 제대로다. 평소엔 오전에 이 앞에서 복작복작하게 장이 열리는데 저녁이나 일요일에 찾으면 아래 사진처럼 광장이 텅텅 비어있다. 

 

 

 

집 근처를 돌아보다보니 아래 사진같은 자잘한 생활용품점들이 많다. 

막상 보면 그닥 살 생각은 들지않는.. 허접한 퀄리티에 실용성과는 거리가 먼 물건들이 가득하지만, 그렇기에 지갑을 열지않고 눈으로 구경하는 맛이 쏠쏠하다. 

 

 

 

 

 

 

집 근처에 사람이 많이 앉아있는 빵집에 들어갔는데, 너무 예쁜 디저트들이 많았다.

미국에 있을 때는 지나치게 느끼하고 무겁고 단 케이크나 쿠키들이 뿐이었고, 스위스에 도착한 후 본 대부분의 빵집은 벽돌처럼 딱딱하고 퍽퍽한 식사용 빵이 대부분이었는데, 여긴 한국사람들이 좋아하는 카페스타일 디저트케이크들이 가득하다.

 

 

커피크림이 들어있는 에끌레어를 주문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열심히 듀오링고로 배운 프랑스어를 써먹어보고 싶어졌다. "Bonjour! Je voudrais une Éclair de cafe, sil vour plait!" 일단 배운 단어들로 문장은 완성되었다. 

"Hello! I would like an coffee eclair, please!" 라는 뜻이다. 듀오링고로 열심히 연속학습을 채우기는 했지만 핸드폰이 아닌 '사람' 에게 프랑스어를 해보는 건 처음이라 과연 발음은 맞는지.. 알아는 들을지 굉장히 두근두근한 첫 도전이었다. 

오 그랬더니 직원이 다시 되묻지도 않고 바로 웃으면서 내가 고른 빵을 담아주었다. 성공인가?!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직원이 나한테 뭔가 두세개정도의 질문을 막 쏟아냈는데 하나도 알아들을수가 없었다. 
습관적으로 일단 "Oui, Oui" 를 했는데, [각주:1] 한쪽 귀로 들어와서 다른쪽 귀로 빠져나간 수많은 프랑스어 단어들 중에 딱 하나가 뇌에서 캐치되었다. "ici?"

어... 저건 "here" 라는 뜻인데... 헉 먹고 갈거냐는 뜻인가?!?! 뭔가 잘못되고있다는 걸 직감하고는 바로 영어가 튀어나왔다. "노노노 쏘리쏘리" 그리고.. 그 후는 결국 다 영어로 마무리되었다. 마지막 "Merci, Au revoir" 정도는 다시 프랑스어로 하고싶었지만... 이미 직원이 영어모드로 바뀐 후라 결국 "Thank you, Bye" 로 인사하고 나왔다.ㅜㅜㅜ

아, 내가 프랑스어를 자꾸 한글이 아니라 영어로 번역하는 이유는... 프랑스어를 배운 듀오링고 앱이 한국어지원이 안돼서 프랑스어를 배울때 영어로 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랑스어를 하려면, 한국어->영어->프랑스어 필터를 거치게 되고, 리스닝을 하려고 해도 머릿속에서 프랑스어->영어->한국어로 세 단계를 거쳐 번역이 된다ㅋㅋㅋㅋ

 

 

 

아 그리고 로잔에 한식집을 하나 발견했다. 한식집이라고 하기에는.. 비빔밥 4종류만 파는 퓨전 비빔밥집인것같긴 하지만.

그런데 가격이 사악하다. 18프랑. 무려 2만3천원!

 

한국인은 밥심이랬지만... 내 주식은 그냥 앞으로도 시리얼이랑 샐러드, 파스타 로 고정해야겠다. 

 

 


 

이렇게 두 시간 가량의 동네 산책을 마친 후에는 토요일까지 마쳐야 하는 논문 리뷰 두 개를 저녁 내내 보았다.

탑 컨퍼런스의 라운드 투 리뷰기 때문에, 오랜 시간 공들여서 읽어야 하는 꽤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일이다. 그렇지만, 이번 기회로 평소 안 읽던 새로운 주제의 논문을 모처럼 읽기도 했고, 아직 출판되기 전 살짝 부족한 부분이 남아있는 논문을 읽고 피드백을 적는 과정 자체는 나름 재밌었다. 평가하는 입장에서 논문을 읽으니 느낀 바도 많고, 배울 점도 많았던 것 같다. 

 

 


 

 

일요일에는 논문 리뷰와 관련된 미팅이 하나 있었고, 어제 썼던 리뷰를 조금 더 다듬었다. 그 외에는 당장 데드라인이 가까운 일이 없어서 모처럼 데드라인에 쫓기지 않고 빈둥거리는 일요일을 보낼 수 있었다. 

 

 

 

 

시간이 났으니 모처럼 요리도 했다. 

미국에서는 파스타나 스테이크 만들어먹는게 가장 쉽게 자주 해먹던 일상요리였는데, 이 곳에서는 지금까지 그조차도 쉽지 않았다.

 

미국보다 스위스에서 훨씬 쉽고 다양하게 볼 수 있는 식재료가 여러가지가 있는데, 대표적인게 햄, 치즈, 초콜렛, 요거트, 빵, 잼, 과일, 야채 인 것 같다. 

 

햄이나 소세지류의 종류가 워낙 다양해서 다 먹어보지도 못할 것 같은데,[각주:2] 그 중에서 우리나라의 슬라이스햄이랑 비슷해보이는 걸 발견해서 사두었었다. 

그 슬라이스 햄에 스위스 지역의 명물인 그뤼에르 치즈랑 시금치&리코타 치즈로 속을 채운 라비올리를 넣고, 페퍼론치노랑 마늘, 허브를 잔뜩 넣고 로제파스타를 만들었다. 

 

미국에서도 Whole Foods Market 같은 고오급 마트에서 수제 냉장 라비올리를 종종 사서 요리를 했었는데, 그때는 그냥 밀가루맛만 많이나는 별 맛없는 파스타라고 생각했었다. 조리방법 자체도 12-15분을 끓이라고 되어있었던 걸 보면 일반 파스타보다 밀가루가 훨 두껍게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여기서는 훨씬 저렴해보이는 막 쌓여있는 마트코너에서 대충 집어왔는데 왠걸, 대박 맛있다.

겉 박스에 조리시간도 2-3분이라고 되어있어서 긴가민가했는데, 아마 밀가루자체가 훨씬 더 얆았던 것 같다. 라비올리가 너무 맛있어서 앞으로 스위스에 있는 동안은 파스타면은 절대 안사고 라비올리만 사서 해먹을거다. 

 

 

스위스에서 저렴한 몇 안되는 것 중 하나가 맥주랑 와인인데, 한달 동안 술을 입에도 못 댔다. 밤에도 항상 밀린 할 일들이 남아있었고, 고작 4시간 자고 일어나서 출근하는 스케줄을 계속하다보니, 술은 마실 엄두도 못냈다. 

 

이번 주말에는 사 둔 맥주랑 와인을 개봉해서 드디어 미션 하나를 끝낸 기분이다. 

  1.  "Yes, Yes"  [본문으로]
  2. 사실 처음보는 식재료에 그리 적극적으로 용기를 발휘하는 편이 아니기도 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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