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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매일 집-연구실-집 을 오가는 대학원생 생활이고, 여행은 커녕 로잔 밖을 아직 벗어나본 적도 없다. 주말을 주말답게 보낸 것도 손에 꼽을 정도라 블로그에 기록할만한 특별한 일은 그닥 없다. 그런데 퇴근하고 일하기 싫어서 괜히 일기장을 또 펼쳤다.

 

 

 


행정처리는 언제쯤 끝날까

스위스 정착에 관련된 행정처리가 다 끝나면 싹 정리해서 올리려고 글을 이미 시작해두었다. 

아직 내용이 없어서 비공개 상태인데... 도무지 이 글의 내용을 언제쯤 채울 수 있을까? 도착한 지 벌써 한 달 쨰인데, 이렇게까지 오래 걸릴 줄 몰랐다. 거주허가증은 아직 나오지도 않았고, [각주:1] 임시 허가증조차 우편을 기다리고 있다. 우편! 그놈의 우편! 7-10일 안에 갈거라고 했는데 오늘로 딱 10일째다. 내일도 안 오면 월요일에 다시 메일을 또 보내봐야 한다.

 

거주허가증이 없으니 아직 계좌도 못 팠고, 보험도 가입을 못했고, 백신도 못 맞았다. 

 

 

 


벌레 너무 싫어...

난 벌레를 싫어하는 걸 넘어서 정말 극혐하는데, 사실 혐오보다도 공포에 더 가깝다. 

미국에 있을 때, 집에 그리마같이 생긴 벌레가 나와서 패닉이 온 상태로 청소기로 빨아들였다가... 그 청소기를 차마 비우지 못하고 통째로 그냥 버리고 새로 샀던 적이 있을 정도다.

 

이 집에 도착한 후에도,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했던 것이 집 구석구석에 있는 거미줄이랑 웰컴거미들을 싹 치우는 거였고, 혹시라도 집에 벌레가 들어올까봐 한국에서부터 철저하게 방충망을 잔뜩 사 와서 창문마다 꼼꼼하게 셀프시공까지 했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지... 집에 하나 둘 벌레가 자꾸 나온다.

 

 

첫 패닉은 거미였다. 나는 스위스 거미와 아주 악연이 깊은데, 3년 전 인턴을 할 때도 방에 어마어마하게 큰 거미가 나와서 약 이틀을 잠도 못자고 꼬박 밤을 새며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아침부터 기분좋게 샤워하고,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는 중이었는데, 그러던 순간 흰 벽에 엄청 큰 거미가 신나게 하강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는지 신나게 일자로 쭉 내려가더니 식탁 뒤쪽으로 신나게 기어가고 있었다. 저 거미가 식탁 뒤로 들어가버리는 순간 난 더 고생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각주:2] 앞 뒤 따질 틈도 없이 청소기로 거미를 빨아들였다. 그조차도 손으로 청소기를 잡고 빨아들일 용기가 안나서, 청소기를 켠 채로 바닥에 내려놓고 발 끝으로 청소기를 쭉 밀어서 거미가 알아서 들어가게 했다..  그런데 역시나 청소기로 벌레를 잡으면 잡을땐 가장 쉽고 빠르지만, 이걸 비우는 데에서 두 번째 난관이 생긴다.  

미친 스위스 물가에서 산 지 2주도 채 되지 않은 청소기를 또 버릴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집 안에서 이 청소기를 다시 여는 건 절대 못할 짓이고, 거의 울다시피 하면서 청소기를 들고 공용 쓰레기장에 가서 탈탈 털고 돌아왔다.. 도대체 이 거미는 어디서 나온걸까?

 

 

두 번째 패닉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시작했다. 평소처럼 잠에 들었다가, 아침에 눈을 떴는데, 베게 바로 옆에 뭔가 노란색? 갈색? 누런색? 의 손톱크기의 뭔가가 있었다. 일어나자마자 아직 안경도 렌즈도 안 낀 상태라 뭔지 분간도 안가고, 진짜 아무 생각없이 '저게 뭐지...' 하는 생각으로 가까이 얼굴을 가져다 대고 봤더니 죽은 벌레 시체였다. 아니 대체 왜??? 분명 어제 자기 전까지 내 침대 깨끗했는데?? 잠들기 전에 방에 날아다니던 벌레도 없었는데? 그 날 하루종일 집에 벌레 하나도 없었는데?? 내가 자는 동안 어디선가 짠 등장해서 내 베게 옆에와서 곱게 죽어버렸다고??? 아침부터 잠도 확 깨고 너무 놀래서 소리도 못 지르고 화들짝 깨서 일어났다가.. 정신을 부여잡고 겨우겨우 치웠다. 그나마 이미 죽은 조그만 날벌레라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세 번째는 지네? 그리마? 같이 길고 다리가 많이 달린 기어다니는 벌레였는데, 퇴근하고 집에 들어와서 물을 따라 마시고 있는데 바닥에 까만게 꿈틀거리고 있길래 가까이 가서 봤더니 벌레였다. 그런데 하반신이 불구가 된 벌레였다. 으악 뭐지? 내가 밟았나? 절반만?

불구가 된 하반신을 못 움직이고 제자리에서 상반신만 신나게 트위스트를 춰 대고 있었는데, 도저히 어떻게 치울 엄두가 안났다...ㅜㅜㅜㅜㅜ 엄마한테 전화해서 울먹울먹 한바탕 난리부르스를 추고 정신을 차린 끝에, 기다란 막대 끝에 박스테이프를 돌돌 감아서 벌레 치우는 끈끈이막대기?를 만들었다.. 그걸 최대한 멀리서 벌레에 살포시 가져다 대었다가, 벌레가 테이프에 달라붙으면 쓰레기봉지에 넣어버리는 계획이었다. 다행히 계획대로 성공... 이게 살아서 슈슈슉 기어갔으면 진짜 패닉와서 집 버리고 도망갔을 것 같은데, 그나마 제자리에서 못움직이는 애라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래도 퇴근할 때 몸이나 가방에 붙어서 딸려 들어왔다가 가방 내려두고 옷 갈아입으면서 떨어진 게 아닌가 싶은다.. 그러면서 하반신 불구가 된 것!! [각주:3]

 

 

이렇게 삼연타로 집에서 벌레를 마주치고 나니, 도저히 집에 정이 안붙는다. 자다가도 어디서 바스락 소리만 나면 벌떡 일어나서 온 집에 불을 다 켜고 집을 샅샅이 뒤지다가 다시 눕는데, 이걸 매일 밤 잠들기 전까지 몇번이나 반복하게 된다.. 집에서 걸어다닐 때도 혹시나 벌레가 있나 싶어서 바닥을 계속 눈으로 훑고, 아침에 일어나서도, 퇴근을 하고 나서도, 그냥 집에 있는 내내 계속해서 끊임없이 온 방의 벽과 바닥을 눈으로 샅샅이 훑게 된다. 집에 있으면 하루종일 긴장이 풀리질 않아서 잠도 깊게 못들고, 책상에 앉아있을 때도 다리를 쭉 펴지 못하고 온 몸을 움츠리고 앉아있게 된다. 책상앞에 앉아있다가 일어날 때조차도, 혹시라도 의자 바퀴에 지나가던 벌레가 깔릴까봐 바닥을 꼭 확인한 후에 의자를 빼는 습관이 생겼다. 내가 생각해도 이 정도면 정신병 수준인것같은데...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돌 것 같다. 으으으 제발 내 집에서 벌레 그만나오게 해주세요.ㅠㅠㅠㅠㅠㅠㅠ

 

 

 


폭우

 

 

도착한 후로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더니, 어제 저녁 어마어마한 비가 왔다. 하늘에선 폭포처럼 비가 쏟아지는데, 천둥번개까지 쉴새없이 번쩍번쩍 쾅쾅. 하필 이 날 나는 스위스 도착 이래 처음으로 9시가 훌쩍 넘어 퇴근을 했고, 우산이 없었다. 

오후 7시만 되면 편의점을 포함한 모든 가게가 문을 닫기 때문에, 일단 우산을 살 곳은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맞고 가자니.. 정말 그럴 엄두가 안날 수준의 비였다.

 

조금 있으면 그치겠지 싶어서 로잔역에서 밤 9시반부터 약 40분을 기다렸는데, 도무지 비가 그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 정확하다는 SwissMeteo 앱에서도, 10시면 좀 그친다고 하더니 막상 10시가 되니 11시가 되어야 그친다고 실시간으로 예보도 바뀌어 버렸다.

큰 지하철역이다 보니 지나가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딱히 와서 해코지를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시간이 시간인지라 괜히 움츠러들고, 무섭고, 혹시라도 인종차별을 당하는 건 아닐까 잔뜩 겁을 먹고 있었다. 미국이었다면 이 시간에 절대 밖에 있지도 않았을 건데 그나마 스위스라 이 상황자체가 가능했던 것.

 

기다리다 기다리다 도무지 가망이 없어보여서, 결국 그냥 폭우 속을 천천히 걸어서 집까지 왔다. 

뛸 필요도 없는게... 3초만 있으면 이미 흠뻑 젖어서 괜히 힘들고 위험하게 빗 속을 뛸 필요가 없다ㅋㅋㅋ 그렇게 온몸에서 물을 뚝뚝 흘리며 물에 빠진 생쥐꼴을 하고 집에 도착했다. 이렇게 비를 제대로 맞아본게... 초등학생때가 마지막이었던가? 기억도 까마득한데 은근 또 시원하고 신선한 경험이었다.ㅋㅋㅋㅋ오히려 생각보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혹시라도 감기걸릴까 집에 도착하자마자 뜨뜻한 물로 샤워도 잘 하고 잤다. 

 

 


국제 택배

어쩌다 보니 국제택배를 여럿 트래킹하고 있다. 우선 (1) 내가 한국으로 보낸 die post (EMS 프리미엄) 국제소포, (2) 엄마가 한국에서 스위스로 보내 준 DHL 국제택배, 그리고 (3) 알리익스프레스로 주문해서 중국에서 스위스로 올 DHL 국제택배. 

 

이 중 (2)번은 월요일(21일) 에 보냈는데 금요일(25일)에 도착한다고 바로 알림이 왔다. 한국에서 스위스까지 4일만에 온다고..!? 과연 내일 무사히 택배가 도착할 것인가 두근두근

 

문제는 (1)번과 (3)번이다.

 

1번은 스위스에서 15일에 발송했는데 트래킹이 안되는 옵션으로 보내는 바람에... 도대체 지금 어디 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이제 곧 열흘인데... 잘 가고있니?

3번은 주문한지 일주일째인데 아직 발송도 안했다. ㅋㅋㅋㅋㅋㅋ사실 별로 기대도 안했다. 뭐 두달쯤 걸리면 오려나?

 

 

 


구글

구글에서 (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직군 리크루팅 메일이 왔다. 이로서 구글한테 리크루팅만 네번째 당해본다ㅋㅋㅋㅋㅋ야호!

대학원에 진학하고 싱숭생숭할때마다, 아무리 봐도 난 진짜 그냥 똥멍청이인데 전산오류로 대학원 잘못 붙은거같다ㅠㅠㅠ하고 굴을 파고 들어가고 싶을때마다 이렇게 구글님이 내 자존감을 회복시켜준다... 내 가치를 알아봐주는건 역시 구글뿐인가... ㅜㅜㅜ 역시 좋은 회사.. 근데 나 연구도 못하는데 진짜 대학원 왜 왔지? 

 

학부시절 했던 여러 소중한 기회와 경험들 중 구글이 제공해 준 것들이 너무 많기도 하고 [각주:4], 그 과정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모두 따뜻하고 좋은 사람들 뿐이었어서, 밑도 끝도 없이 내 마음 속 이미지가 너무 좋은.. 아직도 뭔가 꿈같은 기업이다. 그래서 이렇게 리크루팅이 올때마다 "엉엉 제가 대학원생이라서요ㅠㅠ" 하고 답장하려니까 너무 아깝다. 흑흑. 블랙리스트 등록하지말아주세요.. 제가 좋은 박사가 되어서 다시 문을 두드려볼게요..

  1. 아무래도 두 달은 더 기다려야 나올 것 같다 [본문으로]
  2.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분명 조금전까지 있다가 사라진 벌레다 [본문으로]
  3. 사실 그렇게 믿고싶다. 내 집에서 나온거라고 생각하면 더 끔찍하잖아.. [본문으로]
  4. 사실 구글 코리아 돈 제일 많이 빼먹은 대학생은 나일듯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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