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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스위스에 있을 땐 블로그를 꾸준히 썼었는데, 한국으로 넘어간 이후로 거의 9개월 넘게 블로그에 글을 못썼다.

사실 작년 연말 유럽여행부터 시작해서 쓰고 싶은 글감은 많았는데, 이게 자꾸 쌓이다보니 밀린 방학 숙제같아서, 쓰고 싶은 내용이 있어도 그 앞의 것들부터 순서대로 먼저 써야할것 같은 마음에 자꾸 미루게되었다.

그러던 중 최근에 내 블로그의 몇 안되는 구독자님이 유료 결제를 해 주시는 덕분에(...) 다시 블로그에 글을 써봐야 겠다는 동기부여가 되었다.

 

쓰려고 제목만 만들어둔 포스트 리스트..

 


 

0. 시작은 그저 충동

지난 9/5 월요일은 Labor day 로 공휴일이었던데다가, 9/2 에는 Meta day 로 하루 더 보너스로 전사 휴무일이라, 한국의 추석연휴와 비슷하게 금토일월 4일 휴가가 생겼다. 연휴를 앞두고 거의 한달 전부터 'Labor day 연휴에 뭐하지?' 하는 고민을 했었다. 왠지 직장인이 되니 이런 연휴는 어떻게든 알차게 보내야 할 것만 같았다.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가자니.. 딱히 가고 싶은 곳도 떠오르지가 않고, 연휴라 비행기 가격도 엄청 비쌌던 데다가, 혼자 어딜 가기도 너무 부담스러워서 패스.

실질적인 계획은 없이 고민만 내내 했는데, 이러다가는 정말 꼼짝없이 집에서 뒹굴거리면서 유튜브나 넷플릭스만 보다가 연휴가 다 끝나버릴것 같다는 위기감에 연휴 며칠 전에 충동적으로 Hertz 에서 렌트카를 빌렸다.

마침 새로 만든 신용카드가 Hertz 멤버십 등급을 제일 높은 President's Circle 로 올려주는 혜택이 있어서, 두근두근 랜덤박스를 뽑는 마음으로 렌트카를 빌리러 갔다.

 


1. 포드 머스탱 5.0

내가 결제한 건 하루에 $34짜리 제일 싼 small sedan 이었지만, 멤버십 혜택 덕분에 난 President's Circle zone 에서 아무거나 맘에 드는 차를 끌고 나갈 수가 있었다. 어떤 차들이 있을지 기대하며 Hertz 공항점에 도착해보니 President's circle zone 으로 표시된 주차장 3줄정도에 차가 쭉 주차되어 있었고, 차알못인 나는 정말 제일 예쁜 거 골라야지ㅎㅎㅎ 하는 마음으로 구경을 시작했다.

 

벤츠 세단이나 Jeep 미니 SUV 같은 것들을 보면서 마음이 두근두근하던 차에, 순간 눈을 강렬하게 사로잡은 새빨간 포드 머스탱..!

문 두짝짜리 빨간 스포츠카라니! 내가 지금 아니면 이런 걸 또 언제 타보나 하는 마음에 홀린듯이 운전석에 앉았다.

시동을 딱 거는데 너무 우렁차게 붕붕거리는 소리가 나서 솔직히 좀 쫄았다. 

 

 

솔직히 이렇게 생긴 애를 보고 안빌릴 수가 없었다. 진짜 너무 멋있잖아...

문을 열면 바닥에 머스탱 로고까지 레이저로 쏴준다. 갬성 미쳤음.

빌릴때는 '와! 문 두개짜리 빨간 스포츠카!!!' 하고 빌렸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이 친구는 무려 5,000cc 짜리 기름 먹는 괴물 머슬카였다.

 

이렇게 3일간 머스탱과의 샌프란시스코 나들이가 시작되었다.

 

 


2. 소살리토 (Sausalito)

소살리토는 샌프란시스코에서 금문교(Golden gate bridge)를 넘어가면 나오는 작은 마을이다.

이탈리아 남부의 느낌의 마을이라고 하는데, 사실 나는 이탈리아 남부를 안가봐서 그건 잘 모르겠고... 내 경험 데이터베이스에서는 스위스에서 레만호를 끼고 있던 Montreux나 Ouchy 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안그래도 미국에 온 뒤로 자꾸 스위스의 여유롭던 풍경이 그리웠는데, 비슷한 풍경을 보니 그런 그리운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내가 소살리토에서 하고 싶었던 미션은 바다를 끼고 있는 예쁜 뷰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것!

구글맵이랑 Yelp에서 여기저기 가격과 평점을 찾아보다가 Salito's Crab House & Prime Rib 라는 식당을 골랐다.

 

 

 

 

결과는 대성공!

창밖으로 탁 트여있는 바다랑 언덕, 언덕에 아기자기 모여있는 비싸 보이는 주택들..! 그리고 해산물이 가득 들어있는 토마토 파스타까지 다 너무 완벽했다.

 


3. 금문교 전망대 (Battery Spencer)

이제 밥도 먹었으니 금문교를 보러 갔다.

대중교통 찾거나 우버 탈 필요 없이 바로 내 차 몰고 갈 수 있다는 게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네비게이션을 찍고 나면 터널을 지나 한참을 구불구불하게 언덕을 올라가야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금문교가 보이기 시작하고 갓길에 차들이 쭉 주차되어 있다. 일방통행 길이라 한 번 지나가고 나면 언덕을 다시 끝까지 내려가야되기 때문에, 자리가 나면 바로 주차를 해야 한다.

아니면, 어차피 다들 금문교 구경하고 사진찍고 10분내외로 다시 떠나기 때문에 잠깐 서서 기다려도 괜찮다. 

 

짱 멋진 머스탱과 그렇지 못한 주차 실력..

 

이렇게 코 앞에 금문교가 한눈에 보인다.

 

배터리 스펜서 전망대에서는 금문교와 샌프란시스코 시내가 모두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그리고... 여기서 주차를 하다가 옆 차를 긁었다.

그 쪽 차 뒷 범퍼에 스크래치가 나서, 차주 커플이 '아 이정도면 정말 애매하긴 한데... 일단 면허증이랑 보험카드만 교환하자' 하고 넘어갔다. 

허츠 렌트카에 풀 보험이 들어있어서 내 돈이 나갈 일은 없지만, 진짜 너무 쫄렸다ㅠㅠㅠ 당황해하며 미안해하는 나에게 '그럴 수 있지! 우리도 렌트카 빌리면 익숙하지 않아서 실수하고는 해! 이런 일 때문에 너의 주말 여행을 망치지 마렴! 걱정하지마! 이 정도로는 큰 문제 없을거야!' 하면서 피해자가 역으로 가해자인 나를 안심시켜주었다..

 

허츠에 전화해서 사고 접수 하고, police report 가 필요하다고 해서 난생처음 911 에 전화해서 경찰관도 만나고 police report 까지 받았다. 다행히 그쪽 차주 커플도, 경찰관도 너무 친절하고 스윗했다..

무엇보다 내 머스탱은 옆구리에 하얀 스크래치가 꽤 크게 생겼는데, 경찰이 오길 기다리면서 스크래치가 얼마나 깊은지 손으로 쓱 문질렀더니 갑자기 스크래치가 지워졌다(!) ㄴㅇㄱ 기쁜 마음으로 두세번 손바닥으로 슥슥 문질렀더니 순식간에 다 사라져 버렸다. 진짜 십년 감수했는데, 그게 지워지던 순간의 기쁨은 정말이지 지금도 잊을 수 없다ㅋㅋㅋ

 

당시엔 많이 당황했지만, 결과적으로 내 돈 나간 건 전혀 없었고, 처리도 너무 스무스하게 잘 끝나버려서, 미국에서 차 사고를 냈을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 공짜 인생수업을 들은 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흑흑 미안해요

 

 


4. 하프문 베이 리츠칼튼 호텔 Coastal Trail

이렇게 샌프란시스코의 유명 관광 포인트들을 찍던 도중, 정작 차에서 내려서 관광을 하는 시간보다 관광지까지 이동하는 운전이 더 행복하다는 걸 깨달았다. 차없찐의 손에 쥐어진 머스탱 5.0의 붕붕거리는 핸들은... 너무나도 짜릿했다.

 

그래서 더 남은 샌프란시스코 포인트들을 뒤로하고, Half moon bay 에 있는 리츠칼튼 호텔의 California Coastal trail 코스까지 드라이브나 가기로 일정을 급 선회했다. 저 리츠칼튼 호텔은 5성급 중에서도 아주 럭셔리한... 1박 최저가가 1000달러에 육박하는 곳인데, 캘리포니아의 Coastal trail 코스가 저 호텔을 통과하는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호텔 안에는 Coastal trail 을 방문한 사람들 전용 무료 주차장까지 마련이 되어있었다. 

 

네비를 찍고 호텔로 가다보면 양복을 빼 입은 직원이 차를 하나하나 멈춰세우고 무슨 일로 왔는지를 물어본다. 이 때 쫄지 않고 Coastal trail 을 위한 Free parking 을 찾아왔다고 하면 주차장으로 들여보내 준다.

 

그렇게 들어온 Coastal trail 은... 진짜 역대급으로 예뻤다.

 

 

사진에 보이는 저 초록초록한 잔디는 오른쪽으로 쭉 더 펼쳐져 있는데, 이 호텔의 골프 코스인 듯 싶었다.

저 광활한 들판의 한가운데에 중학생 쯤 되어 보이는 백인 남자애가 아버지랑 여유롭게 골프를 치고 있었다. 넌 진짜 축복받은 금수저구나.. 세상에 감사하며 살렴ㅠ

 

5.  맥 OS에서 들어본 그 이름, Monterey!

다음 날은 더 본격적으로 드라이브를 시작했다.

1번 국도를 타고 해변을 낀 채 남쪽으로 쭉 내려가 Monterey 를 찍고 돌아오는 일정.

 

이 날은 정말 하루종일 운전만 해서 딱히 사진도 없다.

 

 

하루동안 189마일.. 무려 6시간 반을 운전했다.

 

집에서 출발해서 1번국도를 타고 쭉 내려가다가, Monterey 에 도착하기 30분쯤 전에 Phil's Fish Market & Eatery 라는 식당에 들려서 밥을 먹었다. 은서언니가 현지인에게 추천받은 맛집이랬는데, 정말 도착해보니 주변에 주차할 자리도 없고 식사시간이 한참 지난 3시였는데도 30분이상 웨이팅이 있을 정도였다.

 

 

심지어 맛있는데, 양도 엄청 많고 푸짐한데다가, 저렴하기까지! 여기 진심 찐 맛집이다.

든든히 배를 채우고, 다시 30분을 더 달려 Monterey 에 있는 Sunset Beach 에 도착했다.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부는 바닷가에 돗자리를 펴고 누워서, 씻어온 청포도를 하나씩 뜯어먹으면서 여유를 부렸다. 

물을 보니 너무 들어가고 싶었는데... 수건도 없고 예비 양말 하나 없어서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두시간쯤 누워서 뒹굴뒹굴 바다를 즐기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내려갈 땐 1번국도 타고 여유롭게 풍경을 즐기면서 3시간쯤 걸렸지만, 다시 올라올 땐 하이웨이 타고 1시간 반만에 돌아왔다. 

 

6. Point Reyes National Seashore

난 정말이지... 뭘 하면 적당히가 없다. 

전날도 분명 6시간 반을 내내 운전해놓고, 렌트카 뽕을 뽑겠다고 다음날도 빡센 드라이빙 일정을 짜 버렸다. 

 

 

 

이번은 심지어 200마일이 넘는다.

게다가, 쭉 뻗은 도로가 아니라, 도착하기 한시간 전 부터는 구불구불한 급커브 산길을 따라 꽤 좁은 도로가 이어지는데, 가드레일도 없이 정말 차선 바로 한뼘옆이 낭떠러지라 엄청나게 무서웠다. 조금이라도 크게 돌아서 선 밟는 순간 고대로 나락가는거야... 

 

운전 초보에게는 목숨을 건 너무 험난한 여정이었다.

 

 

포인트 레이스 트레일 헤드를 찍고 가던 중 도로에 주차가 쭉 되어있길래, 어? 여기 뭐가 있나? 하고 내렸다가 발견한 Cypress Tree Tunnel. 어마어마하게 큰 나무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쭉 심어져 있는 모습이 정말 장관이었다.

심지어 여기서 웨딩사진을 찍는 분도 있었다. 그 풍성한 드레스에 메이크업에 왕관까지 풀 세팅을 다 하고 여기까지 온 열정 대단해...

 

포토샵으로 사람을 지워보면, 정말 무슨 판타지 영화에 나올거같은 분위기다. 

 

 

그리고 저녁쯤 되니 사람이 다 사라져서, 같이간 언니오빠들이랑 다같이 저 나무그늘 아래에 돗자리를 펴고, 출발하기 전에 재패니즈 슈퍼마켓에서 산 도시락을 까먹었다. 진짜 힐링 그 자체.

 

그리고 드디어 도착한 해안 절벽!

바람이 미친듯이 불어서 진짜 날아갈 뻔 했다. 드론 날리면 바로 물에 수장될 수 있을 정도의 강풍이었다. 

 

 

이렇게 3일간의 드라이브 여행 끝! 토탈 무려 500마일 (=800km) 의 대장정이었다.

 

지금까지 차없찐으로 살면서 너무 서러웠는데, 3일동안 원없이 운전하면서[각주:1]   그 마음을 좀 많이 해소한 것 같다.

  1. 심지어 5000cc 짜리 머슬카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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