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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모든 수업을 포함해 각종 일상들이 모두 온라인으로 전환되었다.

수업과 과제, 시험은 물론 교수님과의 1대1 연구미팅도, 전체 랩 세미나도, 전부 온라인으로만 진행되고 서로 모여서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한 지 벌써 몇달이 지났다. 

 

그래도 이렇게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건 생각보다 금방 적응이 되었고, 오히려 더 편한부분도 있었다.

사실 Work From Home 의 핵심은 저런 시스템적인 것 보다는, 주거공간과 업무공간의 분리가 없고 출/퇴근의 개념이 없다는 데에서 오는 시간관리가 더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전반전 (In 🇺🇸)

나의 WFH 은 크게 전반전/후반전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전반전은 봄학기가 온라인으로 전환된 3월부터, 한국으로 넘어오기 전 5월까지 미국에서의 시간이고,

후반전은 5월 5일 한국으로 넘어와 2주간의 자가격리 후 다시 출국하기 전 7월까지 한국에서 보낸 기간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 전부터 조금씩 조금씩 사 모아서 이미 WFH 셋업이 완성이 되어있었다는 것이다. 

집에서 일을 하더라도 전혀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키보드, 모니터, 랩탑, 스탠드, 충전덱 등등을 다 구비해놓았다.

 

이 전반전의 시기동안 내가 가장 힘들었던 건, 무기력함과 우울함과 끊임없이 싸워가며 시간관리를 해야한다는 점이었다.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니 일찍 일어나지 않게 되고, 알람도 없이 해가 중천에 뜨고 나서야 눈을 뜨고 일어나면 늦은 점심을 차려먹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점심도 그냥 대충대충 집에 있는 재료들로 차려먹고, 커피 한잔 타서 모니터 앞에 앉으면 오후 3시가 되었던 것 같다.

이미 하루를 다 망쳤다는 패배감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고, 모니터에 앉은 후에도 바로 일에 집중하지 못한 채 메일함과 유튜브를 뒤적거리며 한참을 시간을 허비하곤 했다. 그러고 정신을 차려보면 하루종일 한 게 하나도 없다는 위기감이 몰려오고, 해가 다 지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일을 붙잡고 시작해서 아침 새 소리가 들릴때까지 밤을 꼬박 새우곤 침대에 누워 하루를 마무리했다. 

 

제대로 일을 한것 같지도, 그렇다고 신나게 놀지도 못했던. 열평 남짓한 공간에서 벗어나지도 못한 채 하루 걸음수가 천걸음도 안되는 일상을 보내다 보니 전반적으로 일상이 무기력하고 우울해졌던 것 같다.

 

이 상황을 이겨내보려고 나름 부딪쳐본 적도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모닝커피로 하루를 시작하고, 규칙적인 식사와 커피시간을 지키려고 노력해 보았다. 점심을 먹고 난 후에는 장보러 식료품점에도 다녀오고, 저녁을 먹은 후에는 집에서 혼자 실내사이클도 타며 운동량을 늘려보려고 애썼다. 집중을 도와주는 시간측정 어플들도 깔아보았고, 벽만 보고있는 업무환경을 좀 더 개방적으로 새롭게 바꿔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뿐이고, 잠깐만 긴장을 놓으면 다시 너무 쉽게 망가진 패턴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후반전 (In 🇰🇷)

 

한국에서 보낸 후반전.

키보드, 아이패드, 노트북, 그 외 자잘한 주변기기들을 그대로 다 들고올 수 있어서 미국보단 덜하지만 그래도 나름 비슷한 수준의 WFH 셋업이 갖출 수 있었다.

 

미국에서 WFH 을 할때와 비교해보았을 때 추가된 장단점을 위주로 정리해보려고 한다.

 

장점

우선 제일 큰 장점은, 한국에 와있고 가족들과 함께 있으니 더 이상 우울하거나 무기력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집에 혼자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엄마의 잔소리스매싱 덕분에 적어도 오전중에는 늘 일어나게 되었고, 스트레스를 날려줄 댕댕이도 항상 옆에 붙어있다. 점심/저녁 밥을 챙겨먹어야 하는 것이 늘 부담과 스트레스였던 미국에서와는 달리, 한국에서는 집밥과 외식으로 매일의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시간이었다. 더불어 자취를 하면서 혼자 다 해야하는 각종 집안일들도 집에 온 뒤로는 부담이 덜해졌고, 무엇보다 집에선 생활비가 들지 않아서 월급에서 월세를 뺀 나머지 금액은 전부 저축을 할 수 있었다. 원하면 언제든 나가서 커피나 아이스크림을 사올 수 있고, 주말엔 가족들과 나들이나 쇼핑을 하거나, 친구를 만나는 등 소소하게 즐길거리들이 가득했다.

 

단점

단점은 명확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더욱 공부에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상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아침에 일어나서, 강아지랑 와랄랄랄라 놀다가 엄마랑 같이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오후 3시즈음에 모니터 앞에 앉는다. 그러면 또다시 어김없이 유튜브와 메일함을 뒤적거리며 예열시간을 가진다. 아빠가 퇴근하면 거실에서는 TV 소리가 나기 시작하고, 곧 다같이 저녁을 먹고 쇼파에 앉아 TV를 보며 쉰다. 그러다가 10시쯔음이 되면 으악 안돼 나 공부해야돼! 하고 방에 들어가서, 또 새벽내내 연구를 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미국에 있을 때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공부를 못하고 있다. 만약 여기에 친구들과 모임약속이 생기기라도 하면 하루이틀은 또 그대로 날아가 버린다. 

시차로 인한 문제는 전혀 없었다. 교수님께서 배려해 주신 덕분에, 연구미팅도 현지시간 오전 11시, 한국시간 밤 12시 즈음에 하게 되었는데 내 생활패턴상으로는 전혀 늦은 시간이 아니었을 뿐더러, 마침 그때가 딱 부모님이 잠드시고 난 후 혼자 조용히 미팅을 하기에 적합한 시간이었다. 

 

 

거의 3개월을 한국에서 보내고 되돌아보면, 그래도 한국에 와있었던 게 나쁘진 않았다.

고질적으로 한동안 날 괴롭히던 우울함이나 무기력함도 곧바로 해결되었고, 먹고싶던 것들, 하고싶던 것들 모두 마음껏 누리며 스트레스를 잘 관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처음 기대했던 것보단 연구 진도가 많이 더뎌서 아쉽긴 하지만, 결국 그건 나의 의지 문제라 미국에 있었어도 그다지 더 나았을것 같지는 않다. 

 

이제 곧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여전히 수업들은 하이브리드(지만 거의 온라인)이라, 계속해서 WFH 을 하게 될것 같다. 

한국에서 잘 놀고 푹 쉬고 돌아가는 만큼, 지난 봄학기보단 더 나은 가을학기를 보낼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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