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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입국한 당일 그 순간부터, 자가격리 14일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따로 시설에 들어가야 되는 건 아니었고, 집에서 지내되 가족과 생활공간을 분리해서 지내야 했다.

난 2주내내 내 방에서만 지내야 했고, 화장실도 가족과 다른 걸 써야하고 식사도 따로 해야 했다.

어차피 미국에서도 3월부터 거의 세달가까이 집에 갇혀 지냈기 때문에 크게 다를건 없을거란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자의로 외출을 꺼리는 것과, 집 밖을 절대 나갈수없는 강제는 상당히 느낌이 달랐다.

 

자가격리 어플

공항에서 입국할 때 설치를 확인하는 바로 그 어플이다. 설치를 해야만 입국할 수 있다.

이 어플이 앞으로 14일간 핸드폰에서 꺼지지 않고 백그라운드로 내내 돌아가는데, 오류도 많고 발열도 심하고 배터리도 많이 잡아먹는다. 그래도 뭐 이 시국에 급하게 만든 어플이니 이해는 한다.. 어차피 집밖에 나갈수도 없어서 배터리가 많이 달아도 사실 별 상관이 없기도 하다.

 

여튼 이 어플과 함께 14일을 보내야 하는데, 매일 아침 저녁으로 자가진단 하기 버튼을 누르고 체온이랑 증상여부를 체크해서 전송하면 된다.  만약 전송을 안하면 공무원한테 전화가 온다... 몇시에 하는 거냐고 여쭤봤을때 원래는 오전 10시, 오후 8시에 해야되는게 메뉴얼이라고 하셨는데, 담당공무원님이 빠른퇴근이 하고싶으신 건지 성격이 급하신 건지는 몰라도, 아침 9시에 전화와서 얼른 제출해달라고 전화가 오고 오후 3시 즈음에 또 오후꺼 얼른 제출해달라고 전화가 왔다;; 미국이랑 계속 같이 일을 해야해서 보통 밤새 일하고 아침 6시즈음에 침대에 눕는데, 전화 때문에 자다 깨는게 싫어서 나중엔 눕기전에 자가진단 먼저 보내고 잤다. 

 

코로나 검사

해외에서 입국한 사람은 3일이내에 선별진료소를 방문하여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했다. 

미국에서 지내는 내내 농담처럼 "우린 이미 걸렸다 나은 게 분명해. 항체도 이미 있을걸?" 하고 자신했지만, 막상 검사를 하려니 살짝 불안한 느낌은 있었다. 젊은층은 무증상자도 많다고 하는데, 무증상 확진을 받으면 앞으로의 한국스테이 기간이 고달파질 것이었다.

 

시차때문에 집에 도착하자마자 저녁 일찍 잠들었다가, 꼭두 새벽에 눈을 떴다.

해외입국자들이 다들 진료소 오픈하자마자 아침부터 검사하러 가서 담당 공무원들이 힘들다는 덧글을 얼핏 보았는데, 한시라도 빨리 검사가 하고싶어서 부지런히 찾아간다기보다는 그냥 너무 일찍 일어났는데 할 게 없으니 기다리다가 오픈할 시간 되면 맞춰 가서 그런 것 같다.

 

검사를 하러 가기 전에는 담당공무원한테 지금 검사하러 갈거라고 미리 연락을 해야되고, 여러가지 주의사항들을 다시 한 번 숙지시켜준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안되고, 운전자와 대각선방향 뒷자리에 앉아서 창문을 살짝 열고 가야 하고, 마스크는 한번도 벗으면 안되는 등등 정말 철저하게 남들과 격리되어 이동해야 했다. 만약 승용차로 데려다 줄 보호자가 없을경우 구급차가 픽업을 온다고 한다(...) 이동하는 동안에도, 다른 곳에 절대 들리면 안되고 집-진료소-집을 직행해야 했다.

 

선별진료소는 보건소 안에 있는 게 아니라, 보건소 밖에 이렇게 천막과 컨테이너 박스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도착하면, 저 천막에서 여권이랑 비행기표, 신분증 같은걸 보여주면 직원이 서류를 열심히 작성해주고, 컨테이너 박스 안에 들어가서 검사를 받는 방식이었다. 

 

코 깊숙히 면봉을 넣어야된다는 후기를 듣긴 했었지만, 실제로 해보니 생각보다 진짜 고통스러웠다.

코랑 입에 각각 면봉을 깊숙히 넣어서 문질러야 하는데, 정말 각오한 것보다 훨씬 깊게 찌른다. 그러고 나면 정말 으엑 켁켁 하고 눈물이 쏙 빠지게 헛구역질이랑 기침이 나오는데, 아무리 방호복을 입었다지만 남의 얼굴에 대고 기침을 하고싶지는 않아서 면봉을 입에서 빼고 고개를 돌릴 수 있을때까지 그 짧은 순간 기침을 참는것도 엄청 힘들었다. 

 

아무튼 검사를 하고나니 결과는 바로 다음날 아침에 문자로 날아왔다. 음성!! 

 

 

 

 

자가격리 이틀만에 외출

일반적으로는 코로나 검사가 자가격리기간 처음이자 마지막 외출이 되어야 한다. 아, 미국발 입국자들은 격리 해제 이틀 전 검사를 한 번 더 하긴 한다. 그런데 난 검사하고 바로 다음날 현관문 밖을 나가게 되었다;;

 

사건의 전말은 아침 8시. 전날 했던 코로나 검사에서 음성이 떴다는 문자가 엄마 핸드폰으로 전송됏다. 

난 자고 있었는데, 엄마가 거실에서 소식을 전해주었다. 

한국 들어오면 우리 멍멍이랑 한 침대에서 같이잘 일만 기대했는데, 음성 소식에 눈을 떠보니 멍멍이가 침대에 없었다. 

나는 잠이 덜 깬채로 멍멍이를 불렀는데, 멍멍이는 침대 밑에서 눈치만 보고 안올라왔다.

엄마가 멍멍이가 침대 위로 올라가게 하려고 간식인 육포를 침대 위에 던졌다. 격리중이라 내 방에 들어올 수는 없으니까 거실에서 침대를 조준해 던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날아오던 강아지 육포가 내 눈에 명중한 거다. 

막 눈을 뜨고 잠에서 비몽사몽하던 찰나에, 안경도 렌즈도 안끼고 있으니 나는 뭐가 날아오는지도 몰랐고, 허공을 보고 있는데 허공속에서 뭔가가 내 눈을 가격했다. 보이질 않았으니 피하긴 커녕 반사적으로 눈을 감지도 못해서 정말 안구에 직빵으로 맞았다..;;

침대에서 눈을 부여잡고 데굴데굴 구르다가 손을 보니 피가 묻어있고, 거울을 보니 눈의 흰자에 피가 고여있었다.. 눈알에서 피가 나는 건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는 거라 놀라기도 했고, 정말 공포영화가 따로없었다. 

 

문제의 육포. 매우 단단하고 날카롭다.

 

아무튼 그래서 바로 담당공무원한테 전화해서 허락받고 안과로 출발..

안과에도 미리 전화를 하고 갔는데, 분명 아침에 음성을 받았건만 병원 안에 들어가지조차 못하고 간호사들이 나와서 내 눈사진을 찍어갔다.

결국 의사를 직접 보진 못하고, 대신 굉장히 친절하게 설명이 적혀있는 처방전을 받았다.

인생... 버라이어티하다.

 

앞으로 일주일 정도를 치료용 렌즈를 끼고 살아야 해서 내 원래 렌즈대신 안경을 껴야 하는데, 집밖에 나갈 일이 없는게 그나마 다행인건지(...)

 

한식이 최고야

비록 집에만 갇혀있는 일상은 미국과 비슷하거나 좀 더 빡세졌지만, 그래도 좋은 건 한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단 거다.

미국에선 우버이츠로 뭘 시켜먹으려고 해도 끌리는 게 없었는데, 요기요에는 맛있는거 천지다.

 

 

2주 동안 정말 종류별로 잘 먹었다. 한식 최고최고.

 

 

 

격리의 순기능

2주동안 자가격리를 해야한다고 하면 다들 '힘들겠다', '심심하겠다' 하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는데, 사실 난 마침 자가격리가 해제되는 날 랩세미나에서 발표를 맡게 되었다. 정확히 14일째인 격리 마지막날! 박사과정 진학 후 첫 발표를 하게 된 거다. 

 

덕분에 격리 기간 2주 내내 발표준비를 하느라 심심할 틈이 없었다. 

집에선 공부 집중도 잘 안되는데 [각주:1] 발표 날짜가 딱 박혀 있으니 늘어질 수도 없어서 정말 2주간의 격리기간이 연구를 제대로 불태울 수 있는 연구집중기간이 되어버렸다.

 

덕분에 격리 마지막날 새벽 1시에 무사히 발표를 잘 끝마칠 수 있었다. 교수님께 잘했다고 갠톡까지 받았다! ><

 

그리웠던 일상 속 행복들

미국에서도 어차피 집밖에 잘 안나가니 2주 자가격리 그까이꺼~ 금방가겠지~ 생각했는데, 막상 갇혀있으니 굉장히 답답했다. 

잠깐이지만 자유를 뺏기고 나니 그 동안 일상속에서 당연하게 여기고 있던 것들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FREEDOM

저녁 먹고 배부를 때 동네 한바퀴 산책할 수 있는 여유, 필요한 게 있을 때 호다닥 내려가서 사올 수 있는 거, 식후 아메리카노를 쪽쪽 빨면서 입가심을 할 수 있는 행복. 

 

FAMILY

그리고 또 거의 일년만에 집에 돌아오니, 한국에선 당연하지만 미국에선 그렇지 않은것들을 다시 마주한 반가움이 훅 밀려왔다.

부모님과 소소하게 일상대화를 할 수 있는 것, 부르면 달려오는 내 멍멍이, 쓰다듬으면 손에 한가득 느껴지는 부드러운 털뭉치, TV에서 나오는 한국말들, 시차 걱정없이 친구들과 카톡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 국민의 안전을 챙겨주는 정부,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맛있는 한식!

 

격리 하루 전

아, 그러고 보니 격리 시작하고 4~5일쯤 지났을 때 공무원에게 전화가 오더니, 돌아오는 비행편 내 좌석 근처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연락이 왔다. 그래서 이젠 해외입국자가 아니라 밀접접촉자로 분류된다고... 그래도 해제일을 포함해서 따로 달라지는 건 없고 담당공무원만 바뀐다고 했다.

 

14일의 격리는 그래도 생각보단 금방 갔다. 시험기간엔 뭘 해도 시간이 후딱후딱 가는것처럼, 발표준비로 연구 퐈이야ㅑ를 하다보니 2주가 그리 길진 않았던 것 같다.

 

격리 이틀 전, 다시 한 번 선별진료소를 방문했다. 

다른 해외입국자는 원래 입국했을 때 한번만 검사를 받으면 되는데, 미국발 입국자는 격리 해제 직전에도 검사를 한번 더 받아야 된다고 한다. 열흘만에 방문한 선별진료소는 이전과 달리 워크쓰루 부스? 같은게 설치되어 있었는데, 검사 담당 직원은 투명한 박스 안에 들어가 있고 우리가 그 앞에 서서 면봉에 직접 코를 가져다 박아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고개 뒤로 빼지 마세요~~ 라고 계속 말씀하시는데 그게 내 의지대로 되는게 아니라 좀 더 죽을맛이었다. 어쨌든 이번에도 코랑 입 한번씩 쿡쿡 찌르고 검사 완료! 결과는 이번에도 음성!!

 

 

해제

격리 14일째, 드디어 격리가 해제되었다. 

 

격리 해제된 후 첫 외식은 파스타와 해산물 스튜~

  1. 요즘 자택근무 스케줄을 보면 정말 심각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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