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중국에서 코로나가 창궐하고있다는 뉴스를 현실성없이 읽던 게 얼마 전 같은데, 어느 순간 한국으로 훅 퍼지더니, 이젠 온 세계가 바이러스로 시끌시끌하다. 매일 일어나서 인터넷을 볼때마다 상상을 초월하는 뉴스들이 올라오는 요즘이다.

 

네이버 뉴스들을 보면 그래도 한국은 차분히 대처를 잘 하고있다는 분위기다. 

 

안타깝게도 나는 의료체계가 영 시덥지않은 미국에서, 가난한 유학생 신분으로 코로나시국을 맞이하게 되었다.

평생 남일처럼만 느껴지던 여행제한, 비자관련문제, 국경통제와 같은 뉴스들을 요즘에는 가장 먼저 클릭해보게 되고, 미국이 들어간 뉴스는 다 클릭해보다가 현지 영어뉴스까지 찾아보게 되는 현 상황이 낯설다. 

 

먼 미국에서 맞이한 코로나시국을 이 글에 기록해보고자 한다.

 

3월 12일 첫 이메일

3월 12일 목요일, TA를 하는 수업이 3시부터 4시 15분 까지 있었다. 그 날은 드물게 조교들이 교수님 대신 수업을 진행하는 날이어서, 막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참이었다. 세계 곳곳이 코로나로 시끌시끌한것과는 대조적으로 미국은 생각보다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고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길거리는 물론 캠퍼스에서도 마스크를 쓴 사람은 한명도 찾아볼 수가 없었고, 마스크를 쓰면 오히려 감염자로 오해받을 수 있어서 쓰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였다. 여전히 Fraternity들은 매일 밤마다 술파티를 열어댔고, 수업도 오프라인으로 정상적으로 모두 진행되고 있었다. 

 

수업을 나오면서 시끌시끌한 강의실 복도에서 "에모리 대학교[각주:1]는 온라인으로 다 전환되었다던데! Come on, Georgia Tech!!" 하고 불만을 외치는 학생을 보았다. 물론 마스크는 쓰지 않은 채였다. 

 

그 다음주 월-금이 마침 Spring break 라서, 당장 내일인 3월 13일 금요일부터 3월 24일까지 열흘 넘게 수업이 없을 예정이었다. 안 그래도 코로나로 세상에서 흉흉한 뉴스들이 도는 데, break 기간동안 학생들이 전부 여기저기로 흩어졌다가 다시 캠퍼스로 돌아오면 엄청난 후폭풍이 있을거라고 한국친구들끼리 모여서 걱정을 했었다. 그래도 주변 친구들 중에 대다수가 여기저기로 여행계획들을 짜고 있어서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총장님이 게시한 트윗 캡쳐를 받게되었다. 

 

 

스프링 브레이크 이후로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할 예정이며, 모든 학생들은 가능하면 캠퍼스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전체 학생들에게 공지메일이 날아왔다. [각주:2] 

스프링 브레이크 이후의 수업들은 3/30까지 온라인으로 전환되고, 학생들은 캠퍼스로 돌아오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 메일을 시작으로 일주일이 넘도록 매일같이 메일 폭탄이 쏟아졌다.

 

어제 공지한 내용이 오늘 바뀌고, 나날이 캠퍼스 규제가 심해지는 하루하루 정신없는 기간이었다.

 

 

정신없는 변화들

3/30까지 온라인으로 전환하겠다는 메일이 온 바로 다음날, 남은 학기 전체를 온라인으로 전환하겠다는 메일이 왔다. 

그리고 3/20까지로 예정되어 있던 스프링브레이크가 한 주 더 연장되었다. 온라인 강의는 3/30 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Students are asked to leave campus as soon as possible this weekend and to stay away from campus.

위 공지를 시작으로 캠퍼스 내 하우징, 그러니까 학부 및 대학원 기숙사들에 대한 조치들이 뒤를 이었다.

 

첫 메일이 온 바로 다음날인 3/13 금요일부터 기숙사 퇴사조치가 시작되었다.

남은 기숙사비는 일자로 계산해서 환불해주겠다고 하지만, 유학생에게는 기숙사를 퇴사하고 가 있을 집도, 이사를 도와줄 가족도 없었다. 

기숙사가 unfurnished 이기 때문에 침대부터 시작해서 책상, 식탁, 의자들, 화장대, 책꽂이 등등 가구들을 초반에 다 사야했는데, 이렇게 하루만에 갑자기 열개가 넘는 가구들을 끌어안고 홈리스가 될 판이었다.

새 집을 구한다고 해도 한두달짜리 단기계약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일년짜리 계약을 해야하는데, 차 없는 뚜벅이인 나는 이 시국이 끝난 후의 출퇴근을 생각했을 때 캠퍼스 근처를 어차피 벗어날 수도 없었다. 

 

이 근방의 1인실 월세가 200만원에 육박한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하루만에 기숙사에서 쫓겨나는 건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열심히 Exemption form [각주:3]을 작성하며 하루하루를 맘졸이며 살았다.

 

일주일 뒤인 3/19 부터는 연구실들도 모두 출입제한이 걸리고, 사실 상 캠퍼스의 모든 건물들이 락다운 상태가 되었다. 

심지어 세포를 키우는 연구실들까지도 출입이 제한되어서 모든 실험을 멈추고 세포를 얼려야 하는 수준.. 

 

3/20 아침, Exemption 이 받아들여져서 현재 살고있는 1인실 기숙사에 계속 살아도 된다는 허가가 떨어졌다. 그나마 다행인데, 언제 번복될지 모른다는 불안함은 여전하다. 

 

 

사재기

학교가 닫는다는 공지가 온 목요일, 여러 단톡방들에서 근처 마트가 텅텅비었다는 제보들이 들어왔다. 

 

 

평소에 빈 자리 없이 빼곡히 차있던 선반들이 텅 비어있는 사진을 보니, 현실감이 떨어지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도 당장 생필품들을 사러 나가야할것만 같은 불안함이 밀려오지만, 차가 없어 당장 어디를 갈 수도 없는 처지였다.

 

주변 친구의 도움으로 겨우 마트에 가서 필요한 것들[각주:4]을 사고 나니 그나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사재기의 문제는 메일이 뿌려진 당일의 일시적인 현상도 아닌 것 같았다.

 

일주일이 지난 3/19일에 근처 마트를 다녀왔지만, 상태는 오히려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미국의 조치들

캠퍼스 내에서의 조치들과는 별개로, 미국 혹은 조지아주 정부는 정부대로 통 큰 조치들을 매일같이 발표해대고 있다. 

 

각종 식당과 카페, 바 등은 홀에서 먹고 가는 것을 전면 금지하고 테이크아웃이나 배달만 허용하도록 규제되었고, 헬스장, 영화관 등은 모두 영업이 정지되었다. 디즈니랜드와 유니버셜과 같은 테마파크들도 모두 영업을 중단하고, 각종 브랜드(애플, 아르마니 등등..)로부터 COVID 기간동안 오픈하지 않겠다는 메일이 매일같이 오고 있다. 

 

3월 19일, 캠퍼스가 온라인으로 전환된다는 메일을 받은 지 딱 일주일만에 미국은 모든 국경을 걸어잠궜다. 

이젠 미국국민도 미국 밖으로 나가는 것이 제한되고, 외국인은 미국으로 들어올 수 없다.

여름방학에 한국에 잠시 다녀오려던 계획은 이로서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져 포기하게 되었다. 

 

 

코로나

세계 곳곳에서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는 와중에, 미국도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감염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기 보다는, 테스트를 하기 시작하니 확진자가 '발견' 되고 있다는 듯한 느낌이 더 강했다. 

 

 

내가 살고 있는 조지아주의 경우는 총 121명의 확진자가 나왔는데, 놀라운 건 Total Tests 도 121 이라는 거다.

무려 100퍼센트의 확진률을 자랑하는 수치를 보니 발표되고 있는 확진자의 수가 중요한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

사실 주식도 잘 모르고, 해본적도 없어서 매일같이 발표되는 숫자들이 얼마나 미친 숫자인지 잘 체감되진 않는다.

코스피 1500이 뚫렸다고도 하고, 각종 주식들이 다 폭락하고 있다는 소리가 매일같이 들려온다.

환율이 1280원까지 치솟는 걸 목격했는데, 이건 좀 소름이었다. 저정도로 환율이 오른건 무려 11년만이라고 한다.

 

난 달러를 가지고 있고 달러를 벌고 있으니까 좋은건가... 싶기도 하고, 다들 이럴 때 주식을 들어가야 한다고 해서 사야 되나 싶기도 하고 귀가 팔랑팔랑하고 있는 요즘이다. 

 

 

 

  1. 바로 근처에 있는 또다른 대학교이다 [본문으로]
  2. 정식 공지보다 트위터로 먼저 소식을 알려주다니.. 미국스럽다 [본문으로]
  3. 전 갈곳이 없어요. 봐주세요ㅜㅜㅜ [본문으로]
  4. 주로 먹을거.. [본문으로]
반응형